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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 앞세운 재건축…소형·저렴주택 되레 줄여 전세난 등 부작용 악화
주거약자인 세입자 위해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사회적 공공성 강화해야


지난해 말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갓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공공성을 너무 강조하면 재건축이 어려워져 주택 공급이 떨어지고, 이는 결국 집 없는 서민들을 서울 밖으로 내쫓게 된다는 경고였다.

문제는 장관이 염두에 둔 공공성이 ‘시장적 공공성’이라는 점이다. 시장을 통해 공급이 늘면 집값이 떨어져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가져온다는 게 시장적 공공성이다. 이런 믿음에 기초한 주택정책의 무게중심은 집을 살 수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주택을 더 많이 지어 공급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그러나 정책의 실제 혜택은 저소득 무주택자나 세입자보다 유주택 중산층이나 건설업자, 부동산 개발업자에게로 편중된다. 시장주의 주택정책의 치명적인 한계이자 결함은 바로 ‘사회적 공공성’ 결핍이다.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서울의 주택문제를 풀 수는 없다.


 
2005~2010년 서울의 총주택 수는 29만8000가구 증가했고 주택 보급률은 93.7%에서 97.0%로 3.3% 증가했다. 그러나 자가 보유율은 50.4%에서 51.3%로 0.9%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중대형을 우선하는 공급 방식이나 소득 대비 높은 집값 등으로 인해 주택이 공급되더라도 저소득 주거층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특히 서울에선 전국 평균인 10%를 웃도는 50%의 가구가 무주택 세입자다.

새 주택정책의 키워드는 ‘사회적 공공성 강화’다. 주택을 상품(부동산)으로만 간주하는 데서 복지재(주거수단)로 전환하고 재산권 중심에서 주거권 중심으로, 주택 중심의 철거식 개발에서 주거 공동체 중심의 재생과 보전으로 주택정책의 무게중심이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소형 주택 비율 확대를 강남 재건축사업 추진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재건축에서 소형 비율 확대는 용적률 등을 높여주는 대가로 재건축조합 측이 반대급부로 내놓는 ‘공공기여분’에 해당한다. 저렴한 소형 주택 공급 확대가 서민 주거 안정의 핵심 방안이라면 큰 평수 중심의 재건축에서 소형 비율 확대는 재건축 공공성 강화의 핵심 수단이다.

민간 소유자들이 추진 세력이지만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공익적인 도시계획사업이다. 주택 재건축과 재개발은 기성 시가지에서 도시계획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여서 도시계획적 결정으로 용적률 상승과 같은 개발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나 사업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현행 재건축 방식에서는 저렴한 소형 주택 공급이 근본적으로 제한적이다. 가락시영아파트의 경우 기존주택 6600가구 모두가 60㎡ 이하지만 이를 종상향시켜 재건축하면 전체 주택은 8903가구로 늘어나는 반면 소형 아파트는 4242가구가 사라진다.

강남발 전세난도 이런 이유로 반복됐다. 따라서 재건축에서 소형 혹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을 더 공급하면 주택 가격 안정이나 서민 주거 안정 등과 같은 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강남에서 소형 주택을 늘리는 것은 거주민의 다양성을 가져오면서 원거주자의 재정 부담을 줄여 재정착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대형 중심의 재건축이 낳은 문제의 순환 고리를 끊고 재건축을 진정한 주거 재생으로 거듭나게 하는 견인차인 셈이다.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 건립 건도 아직 서울시가 최종 결정을 내린 상태는 아니다. 박 시장은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공약하면서 한강변 초고층 재건축사업도 주민 의견을 들어 출구 중심의 대안을 찾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기부채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전임 시장 때부터 초고층 재건축을 반대해왔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불투명한 사업 전망, 초고층 고밀 개발로 인한 환경과 교통 문제에 대한 우려도 더해지면서 한강변 초고층화는 추진 당위성을 급격하게 잃었다.

무엇보다 한강변의 공공환경이 초고층 단지들에 의해 사실상 사유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행 방식으로는 사업의 공공성이 전혀 담보될 수 없다는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업은 ‘한강의 공공성 회복’을 내걸고 전임 시장이 공세적으로 추진했던 것인데 말이다. 문제는 이를 위한 수단이 용적률을 최대로 허용해주는 대신 민간이 보유한 토지의 25~40%를 기부채납하도록 한 것이다. 말하자면 경관, 접근성, 생태환경 등을 민간에 팔아 한강의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한강의 공공성은 한강으로 접근성을 높이거나 공원을 설치하는 것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대신 한강 하천 생태계의 복원, 경관 조망권 공유화, 한강변 일대에 대한 수변경관보전지 지정 관리, 장기적 공간구조 개편과 연동된 한강변 토지 이용 체계 확립 등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

박원순표 주택정책의 공공성은 주거 약자인 세입자에 대한 배려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박 시장이 후보 시절 내놓은 주택정책의 간판공약은 3년간 공공임대주택 8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2011년 서울의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책의 5%(7만2000가구)에 불과하다.

임대주택 대기 수요는 약 16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박 시장은 서울의 임대주택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간 2만5000가구씩 임기 내 8만가구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주택의 공공성 실현에 획기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서울시가 내놓은 세입자 배려 정책들은 전에 없이 다채롭다. 공급 측면에서 다가구·다세대 공급 기준 완화, 가로주택 정비사업, 국민주택 규모 하향 조정, 마을 만들기 등은 모두 세입자를 배려한 사람 중심 주택, 주거지 정비 방식이다. 백미는 뉴타운 재개발을 ‘사회약자 보호형’으로 전환하는 ‘1·31 뉴타운 대책’이다.

이 밖에 서울시는 전세보증금상담센터 운영, 무주택전세보증금 융자금 확대, 전·월세 전환 비율의 시·도 자율지정제, 공정임대료제, 계약갱신청구권제, 임대차보호기간 연장(2년→3년), 실거래가 중심의 전세 정보 제공 등도 모두 제도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주택정책을 주거권 혹은 주거인권 차원에서 풀겠다는 새로운 주택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일찍이 주거복지를 구현한 서구선진국들이 거쳐 간 길이다. 소득 2만달러가 넘어선 지금, 주택(정책)의 공공성 강화, 주거복지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역사적인 필연이다. 서울시는 지금 이 같은 방향으로 선회하는 초입에 서 있다.

한국경제신문 2012.3.24

Posted by 열린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