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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와 녹색경제

-지속가능발전의 위기와 기회-

 

20년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이하 리우)에서는 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첫 세계 환경회의가 열렸다. ‘환경과 개발에 관한 정상회의혹은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란 이름으로 열린 이 회의에서 정상들은 지금과 같은 경제중심의 발전으로는 인류사회가 지탱 가능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현재의 발전이 미래세대까지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이른바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원칙을 채택했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참여국들은 주요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실천의제를 선정해 실행에 옮긴 뒤 매 10년마다 그 성과를 평가하면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회의를 열기로 결의했다.

 

이렇게 해서 2차 회의가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세계정상회의(WSSD)’란 이름으로 열렸다. 그리고 10년 뒤인 2012, 3차 회의가 브라질 리오(620-22)에서 리우+20’란 이름으로 열린다. 정식명칭은 ‘2012년 유엔지속가능발전회의(2012 UN Conference on Sustainable Development)’. 193개국이 참여하는 리우+20에서 다루어질 핵심 의제는 녹색경제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세계기구설립두 가지이다.

 

두 의제는 제64차 유엔총회(2009)에서 채택된 리우+20의 실천목표 세 가지를 달성할 방안으로 선정됐다. 세 가지 목표는, 첫째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정치적 의지와 사명감을 새로이 하고, 둘째, 현재까지의 성과와 지속가능한 발전과 관련된 주요 정상회의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과제를 분석하며, 셋째 재정위기, 식량위기, 기후안보 등 새로운 도전과 위협을 규명해 목록화(list)하는 것이었다. 리우+20의 두 가지 핵심의제 중, ‘녹색경제는 지속가능발전과 빈곤퇴치를 위한 것이라면, ‘기구 설립은 지속가능발전을 범지구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중 녹색경제가 핵심인 데, 이는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지난 20여년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1992년 첫 회의에서 채택된 지속가능발전은 경제개발, 사회발전 그리고 환경보호를 동시적으로 추진하는 통합적 발전개념이다. 그러나 현실의 지배적인 발전시스템은 여전히 경제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나 환경오염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손을 쓸 마땅한 방도가 없다. 이를테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사회적 기회는 계층간, 지역간, 국가간에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자원이용의 비효율성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 오염비용이 재화의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결과, 환경에 부담을 주는 상품소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물과 같은 자원의 상품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자연의 과잉 개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 모두는 결국 지속가능발전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발전시스템의 핵심인 경제의 녹색화 없이는 지속가능발전이 없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는 곧 녹색경제에 관한 관심과 담론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중요한 명분이 되었다.

 

녹색경제(green economy)란 용어는 1989년 영국의 데이비드 피어스 등의 녹색경제를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a Green Economy)’이란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정부는 지속가능발전이 환경보호와 함께 경제성장과 결합될 수 있는 지에 관한 연구를 의뢰했고, 피어스 등은 환경적 배려가 경제, 그리고 정치적 정책결정과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 지를 이 보고서를 통해 밝히고자 했다. 녹색경제는 바로 이 대목에서 사용되었다. , 영국경제에 대한 처방으로, 국가경제에서 지속가능성을 성취하기 위해 환경과 경제정책이 통합하는 게 중요함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녹색경제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한편, UNEP녹색경제를 위하여(Toward a Green Economy)’란 보고서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경제성장, 고용에서의 증가와 함께 빈곤을 감소시키는 경제를 녹색경제라 지칭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경제 전반에 걸친 활동을 곧 녹색경제라 했다. 생태근대화론의 입장을 반영하는 개념으로서 녹색경제는 경제, 사회, 환경시스템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발전으로 가는 한 과정(pathway)으로 간주되었다. 지속가능발전의 3개 축 중에서 경제부문의 녹색화(경제와 환경의 접목)를 우선전략으로 채택하고 중요시하는 입장이 곧 UN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가 녹색경제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녹색경제의 의미규정이 이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녹색경제의 성격은 물론이고 지속가능발전과의 관계설정, 녹색경제에 이르는 이행방안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녹색경제의 의미가 파악되어야 한다. 녹색경제를 바라보고, 나아가 지속가능발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는 사실 입장에 따라 상이하다. 실제 리우+20의 핵심의제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녹색경제의 해석과 실천방식을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과 갈등이 일었다. 크게 보면, 국제회의에서 늘 그렇듯, 이는 주로 선진국과 개도국 간 대립의 양상을 띠었다. 이는 멀리 1992년 리오회의로 거슬러 가지만, 가까이는 2002년 요하네스버그 회의 당시 지속가능발전의 성과를 둘러싼 해석과 처방을 둘러싸고 시작되었다.

 

1992년 리오회의에서 정상들은 지속가능발전을 대안발전 개념으로 채택했고 이후 10년간 각국 정부들은 이를 각국의 최우선 국가발전전략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역설적으로 전지구적 빈곤 심화, 환경 악화 등과 같이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더욱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지속가능발전이 추진되는 1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더 극성을 부렸다.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이념인 신자유주의의 발호가 지속가능성의 구현을 가로막으로 주범으로 주목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원인과 처방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나눠졌다. 선진국들은 자유교역, 개방화, 민주화 부진 등으로 원인을 돌린 반면, 개도국들은 선진국 자본 주도로 세계시장이 개방되고 자본거래가 자유화되며 경제적 목적의 자연 착취형 개발이 범지구화 된데 원인을 둘렸다. 처방에서도 선진국은 자유교역 확대, 개방화, 민주적 거버넌스 등을, 개도국은 자본거래규제, 선진국의 기술이전 및 경제적 원조 확대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있었지만 20022차 정상회의는 국가별 로 지속가능발전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을 권고하는 요하네스버그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후 10년간(2002-2011) 지속가능발전의 이행을 위한 노력과 함께 기후변화 등을 대응하기 위한 대한 논의와 시도가 범지구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글로벌 경제위기는 계속되었고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도 더욱 악화되어 갔다. 이런 와중에서도 각국 정부들은 물질적 부의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제중심 정책운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속가능발전을 앞세우면서 녹색경제가 리우+20의제로 채택된 데는 신자유주의의 득세 속에서 환경과의 상생으로 포장된 경제중심의 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선진국의 의도가 숨어 있다.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녹색경제는 기본적으로 선진국에 적합한 경제모델이다. 녹색기술, 녹색산업, 녹색소비 등 환경을 이용해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은 선진국만 차별적으로 가지고 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들이 녹색경제를 지속가능발전에 이르는 과정(pathway)’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기실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을 녹색경제로 대체하려는 중심국의 계산을 내밀히 반영하고 있다. 경제중심의 발전개념을 대체하기 위해 경제, 사회, 환경을 통합하는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이 도입되었지만, 경제를 우선하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채 결국 녹색을 무늬로만 덧씌운 경제중심의 발전개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녹색경제를 중심의제로 채택하고 세계 각국 정상들을 불러 이를 논의케 하는 리우+20는 선진국 주도의 이러한 회귀를 공식화하는 의식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 주도의 녹색경제 의제는 공교롭게도 MB정부의 녹색성장과 일치하고 있다. 최소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리우+20의 핵심의제인 녹색경제는 녹색성장의 다른 표현에 불과할 뿐, 내용적으로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리우+20가 마치 한국을 위한 국제회의 혹은 한국이 주도하는 국제회의로 비춰지곤 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MB정부 자신도 리우+20 의제 설정 시 한국의 녹색성장을 준거로 적극적으로 제안했고, 또한 의제를 설정하는 각종 국제회의에 대표단을 보내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발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치권자에 의해 녹색성장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채택되어 있는 만큼, 이의 집행을 맡은 정부 담당부처들이 정권의 홍보 차원에서 녹색경제가 리오+20의 의제로 채택되도록 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 리우+20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녹색성장의 홍보 연장선에서 리우+20를 선전하면서 정부의 주도성을 자랑했다. 이를 위해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 MB식 녹색성장이 세계적인 선도모델 인냥 국내외적으로 홍보했다.

 

한국의 녹색성장 이니셔티브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크게 교차하고 있다. 긍정적 평가는 유럽연합과 이태리, 덴마크 등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반면, 부정적 평가는 프랑스와 인도,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일부 개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인도와 중국은 한국이 한국의 어젠다를 우리가 써야 하나하면서 모든 문서에서 녹색성장 단어의 사용을 반대하는 등 녹색성장의 국제사회 적용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MB식 녹색성장에 대한 이중적 평가는 엄밀하게 보면 녹색성장 자체의 적실성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리우+20의 전체 의제와 그 설정방식에 대한 선·후진국간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MB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정부가 추진해 온 녹색성장이 선진국 주도의 리우+20 의제와 일치함으로써, 그 정당성이 대외적으로 사실상 인정받는 행운을 얻게 됐다. 리우+20을 대하는 MB정부는 그래서 물 만난 고기와 같다. 이로 인해 MB정부는 시민사회 중심으로 요구해 온 녹색성장의 정당성과 추진의 민주성 확보에 대한 요구를 회피할 수 있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국내 환경운동진영은 MB식 녹색성장이 녹색세탁을 한 사실상의 토건식 경제성장에 다름 아닌 것으로 줄곧 비판을 해왔다. 4대강을 운하로 만들려다 시민사회의 저항을 직면하자,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녹색성장을 21세기 한국사회의 발전패러다임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녹색성장을 국정의 최우선으로 하는 다양한 시책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해서 녹색성장을 위한 무수한 전략, 계획, 프로그램, 지원법, 프로젝트들이 마련되었지만, 기실 지난 정부가 추진해왔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제도와 성과들은 모두 폄훼를 당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환경부 장관 소속의 것으로 격하시키고, 그 자리에 녹색성장위원회를 설립해 앉혀 놓은 게 그 백미다. 강등된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결국 녹색성장위원회의 한 전문위원회로 편입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나마 녹색성장위원회에는 한국사회를 대변할 진정성 있는 녹색주의자들은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금번 리우+20녹색경제를 지속가능발전에 이르는 한 경로이자 수단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지만, MB정부는 거꾸로 지속가능발전을 녹색경제에 이르는 경로이자 수단으로 자리매김 해 놓은 것이다. 무엇보다 그 동안 추진한 녹색성장의 속내를 봐도 이를테면 녹색뉴딜, 4대강 정비, 원자력 중심 에너지정책 등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모든 국민이 목격해 왔던 바다. 토건식 경제성장이 곧 MB식 녹색성장 혹은 녹색경제의 실체임 셈이다. 환경운동진영이 우려하는 것은 이렇게 모순투성인 MB식 녹색성장에 대해 리우+20가 면제부를 줌으로써 미래에 언젠가 진정한 녹색경제를 추구해야 할 역사적 기회를 또다시 박탈당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그러나 냉철히 들여다보면, 지속가능발전 대신 녹색을 덧씌운 경제중심의 성장과 발전을 다시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 해줄 리우+20식 녹색경제의 모순은 MB(토건식) 녹색성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 전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대한 기대와 달리 리우+20에 대해 국내의 시민사회가 낮은 기대치를 보이는 데는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다. 만약 리우+20MB식 녹색성장 혹은 녹색경제를 정당화 해준다면, 녹색가치 회복을 위한 시민운동은 국내적 모순과 세계적 모순을 동시에 풀어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지게 된다.

 

그렇지만 너무 비관적일 필요가 없다. 세계화시대 환경문제는 이미 일국적이면서 동시에 범지구적으로 풀어야 할 지구촌 사회의 공통 과제가 되어 있다. MB식 녹색성장을 넘어서기 위한 한국의 시민운동은 리우+20식 녹색경제를 대응하는 범지구촌 시민운동과 결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먼저 리우+20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감시와 참여가 지금부터 본격화되어야 한다. 이는 리우+20의 회의 참여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후의 전개과정에 대한 모니터링과 체계적인 대응도 함께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리우+20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시민운동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Posted by 열린글통
2012.05.07 13:40

‘비리의 온상’ 도시개발 2012년2012.05.07 13:40

[시론]‘비리의 온상’ 도시개발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용도변경을 둘러싼 청탁·압력·돈거래의 망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개발업자와 정권실세 사이의 청탁관계로 시작하더니, 정권실세와 선거캠프, 두 시장의 정무라인, 시 간부와 도시계획위원, 현 대통령의 시장 시절 결재라인 등으로 뻗치고 있다. 현 정권의 최대 비리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는 ‘파이시티 사건’의 본질은 도시개발이고, 그 중심에 도시계획위원회가 있다.

 
도시계획위원회는 도시의 각종 시설을 개발하고 설치하는 시책들을 자문·심의·의결하는 기구다. 법에 규정된 심의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떤 도시계획사업도 진척될 수 없다. 그로 인해 자산상의 막대한 불이익을 겪을 수 있지만, 허용되면 많은 혜택을 얻기도 한다. 우리의 도시에는 아직도 수많은 개발사업이 준비되고 있고, 각각은 복잡한 이해득실의 관계식을 가지고 있다. 도시계획은 ‘이권 창구’로 기능하면서 비리 온상으로 쉽사리 전락한다.

9만6007㎡ 부지에 지상 6층, 지상 35층 5개 동으로 판매 및 업무, 교육연구, 운수시설 등을 설치하는 파이시티 사업은 총사업비만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서울 외곽 값싼 화물터미널 부지가 황금 알을 낳는 국내 최대 단일 복합유통센터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기대되는 개발이익만 1조원을 웃돈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두 번의 도시계획 심의를 걸치면서 사업성이 높아진 것이다.

양재동 부지는 20년간 화물터미널로 지정돼 있어 백화점, 오피스텔 등이 들어설 수 없었다. 2005년 12월7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이듬해 5월 ‘화물터미널 용지 세부시설 변경’이 고시됐다. 이에 따라 터미널의 5배나 되는 복합유통단지가 들어서게 됐다. 그리고 3년 뒤 파이시티 측은 건축심의를 신청하면서 부대시설인 업무시설 중에서 오피스텔 분양이 가능한 비율을 6.8%에서 23%로 늘려달라는 도시계획 변경을 요청했고, 2008년 8월20일 도시계획위원회에서 20%까지 늘리는 것으로 승인됐다.

두 번의 도시계획 심의는 모두 ‘정상적 숙의’를 담보하지 못했다. 첫 심의는 ‘세부시설 변경에 따른 경미한 사항’으로 규정해 ‘자문’이란 방식으로 진행됐다. 2004년 5월 정책회의에서 ‘백화점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이명박 시장의 지시를 따르기 위한 방편이었다. 두 번째 심의에서는 부대시설로서 업무시설의 범위를 임의적으로 확대해 오피스텔 등을 포함시킨 변경안이 처리됐다. ‘도시계획이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반발이 있었지만 파이시티 측의 요청대로 가결됐다.

편법 처리는 도시계획위원회의 구조적인 역할 한계와 무관치 않다. 안건상정 전에 시장의 사전방침이 정해졌고, 정권실세와 개발업자, 시 간부 사이에 청탁이 오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한 업자에게 유리하도록 관계규정이 임의적으로 해석됐고, 시 간부들 사이에서는 통과 방침이 이미 공유된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라도 문제제기를 하고 표결을 통해서라도 입장을 분명히 했어야 하지만, 도시계획위원회는 끝내 ‘거수기’에 머물렀다. 오랫동안 관료적으로 운영돼온 결과, 친개발, 보수적(친정부적) 성향의 인사들이 주로 참여하는 구조로 위원회가 고착된 것의 자업자득이다.

도시계획위원회를 둘러싼 안팎의 이해관계 구조는 개발사업을 둘러싼 먹이사슬과 쉽게 맞닿는다. 규모와 이익이 클수록, 이에 동원되는 청탁·압력·돈거래의 사슬은 전방위적으로 뻗어간다. 케빈 멕코벤이 말하는 토건국가에서의 ‘토건마피아’는 이러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개발이란 먹거리를 숙주로 번식하는 부패적인 기생충과 같은 존재들이다. 결국 개발권력을 어떻게 민주화하느냐가 해결책이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발주의를 거두어내는 자의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Posted by 열린글통

사업성 앞세운 재건축…소형·저렴주택 되레 줄여 전세난 등 부작용 악화
주거약자인 세입자 위해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사회적 공공성 강화해야


지난해 말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갓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공공성을 너무 강조하면 재건축이 어려워져 주택 공급이 떨어지고, 이는 결국 집 없는 서민들을 서울 밖으로 내쫓게 된다는 경고였다.

문제는 장관이 염두에 둔 공공성이 ‘시장적 공공성’이라는 점이다. 시장을 통해 공급이 늘면 집값이 떨어져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가져온다는 게 시장적 공공성이다. 이런 믿음에 기초한 주택정책의 무게중심은 집을 살 수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주택을 더 많이 지어 공급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그러나 정책의 실제 혜택은 저소득 무주택자나 세입자보다 유주택 중산층이나 건설업자, 부동산 개발업자에게로 편중된다. 시장주의 주택정책의 치명적인 한계이자 결함은 바로 ‘사회적 공공성’ 결핍이다.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서울의 주택문제를 풀 수는 없다.


 
2005~2010년 서울의 총주택 수는 29만8000가구 증가했고 주택 보급률은 93.7%에서 97.0%로 3.3% 증가했다. 그러나 자가 보유율은 50.4%에서 51.3%로 0.9%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중대형을 우선하는 공급 방식이나 소득 대비 높은 집값 등으로 인해 주택이 공급되더라도 저소득 주거층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특히 서울에선 전국 평균인 10%를 웃도는 50%의 가구가 무주택 세입자다.

새 주택정책의 키워드는 ‘사회적 공공성 강화’다. 주택을 상품(부동산)으로만 간주하는 데서 복지재(주거수단)로 전환하고 재산권 중심에서 주거권 중심으로, 주택 중심의 철거식 개발에서 주거 공동체 중심의 재생과 보전으로 주택정책의 무게중심이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소형 주택 비율 확대를 강남 재건축사업 추진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재건축에서 소형 비율 확대는 용적률 등을 높여주는 대가로 재건축조합 측이 반대급부로 내놓는 ‘공공기여분’에 해당한다. 저렴한 소형 주택 공급 확대가 서민 주거 안정의 핵심 방안이라면 큰 평수 중심의 재건축에서 소형 비율 확대는 재건축 공공성 강화의 핵심 수단이다.

민간 소유자들이 추진 세력이지만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공익적인 도시계획사업이다. 주택 재건축과 재개발은 기성 시가지에서 도시계획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여서 도시계획적 결정으로 용적률 상승과 같은 개발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나 사업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현행 재건축 방식에서는 저렴한 소형 주택 공급이 근본적으로 제한적이다. 가락시영아파트의 경우 기존주택 6600가구 모두가 60㎡ 이하지만 이를 종상향시켜 재건축하면 전체 주택은 8903가구로 늘어나는 반면 소형 아파트는 4242가구가 사라진다.

강남발 전세난도 이런 이유로 반복됐다. 따라서 재건축에서 소형 혹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을 더 공급하면 주택 가격 안정이나 서민 주거 안정 등과 같은 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강남에서 소형 주택을 늘리는 것은 거주민의 다양성을 가져오면서 원거주자의 재정 부담을 줄여 재정착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대형 중심의 재건축이 낳은 문제의 순환 고리를 끊고 재건축을 진정한 주거 재생으로 거듭나게 하는 견인차인 셈이다.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 건립 건도 아직 서울시가 최종 결정을 내린 상태는 아니다. 박 시장은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공약하면서 한강변 초고층 재건축사업도 주민 의견을 들어 출구 중심의 대안을 찾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기부채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전임 시장 때부터 초고층 재건축을 반대해왔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불투명한 사업 전망, 초고층 고밀 개발로 인한 환경과 교통 문제에 대한 우려도 더해지면서 한강변 초고층화는 추진 당위성을 급격하게 잃었다.

무엇보다 한강변의 공공환경이 초고층 단지들에 의해 사실상 사유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행 방식으로는 사업의 공공성이 전혀 담보될 수 없다는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업은 ‘한강의 공공성 회복’을 내걸고 전임 시장이 공세적으로 추진했던 것인데 말이다. 문제는 이를 위한 수단이 용적률을 최대로 허용해주는 대신 민간이 보유한 토지의 25~40%를 기부채납하도록 한 것이다. 말하자면 경관, 접근성, 생태환경 등을 민간에 팔아 한강의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한강의 공공성은 한강으로 접근성을 높이거나 공원을 설치하는 것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대신 한강 하천 생태계의 복원, 경관 조망권 공유화, 한강변 일대에 대한 수변경관보전지 지정 관리, 장기적 공간구조 개편과 연동된 한강변 토지 이용 체계 확립 등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

박원순표 주택정책의 공공성은 주거 약자인 세입자에 대한 배려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박 시장이 후보 시절 내놓은 주택정책의 간판공약은 3년간 공공임대주택 8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2011년 서울의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책의 5%(7만2000가구)에 불과하다.

임대주택 대기 수요는 약 16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박 시장은 서울의 임대주택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간 2만5000가구씩 임기 내 8만가구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주택의 공공성 실현에 획기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서울시가 내놓은 세입자 배려 정책들은 전에 없이 다채롭다. 공급 측면에서 다가구·다세대 공급 기준 완화, 가로주택 정비사업, 국민주택 규모 하향 조정, 마을 만들기 등은 모두 세입자를 배려한 사람 중심 주택, 주거지 정비 방식이다. 백미는 뉴타운 재개발을 ‘사회약자 보호형’으로 전환하는 ‘1·31 뉴타운 대책’이다.

이 밖에 서울시는 전세보증금상담센터 운영, 무주택전세보증금 융자금 확대, 전·월세 전환 비율의 시·도 자율지정제, 공정임대료제, 계약갱신청구권제, 임대차보호기간 연장(2년→3년), 실거래가 중심의 전세 정보 제공 등도 모두 제도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주택정책을 주거권 혹은 주거인권 차원에서 풀겠다는 새로운 주택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일찍이 주거복지를 구현한 서구선진국들이 거쳐 간 길이다. 소득 2만달러가 넘어선 지금, 주택(정책)의 공공성 강화, 주거복지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역사적인 필연이다. 서울시는 지금 이 같은 방향으로 선회하는 초입에 서 있다.

한국경제신문 2012.3.24

Posted by 열린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