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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와 녹색경제

-지속가능발전의 위기와 기회-

 

20년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이하 리우)에서는 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첫 세계 환경회의가 열렸다. ‘환경과 개발에 관한 정상회의혹은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란 이름으로 열린 이 회의에서 정상들은 지금과 같은 경제중심의 발전으로는 인류사회가 지탱 가능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현재의 발전이 미래세대까지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이른바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원칙을 채택했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참여국들은 주요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실천의제를 선정해 실행에 옮긴 뒤 매 10년마다 그 성과를 평가하면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회의를 열기로 결의했다.

 

이렇게 해서 2차 회의가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세계정상회의(WSSD)’란 이름으로 열렸다. 그리고 10년 뒤인 2012, 3차 회의가 브라질 리오(620-22)에서 리우+20’란 이름으로 열린다. 정식명칭은 ‘2012년 유엔지속가능발전회의(2012 UN Conference on Sustainable Development)’. 193개국이 참여하는 리우+20에서 다루어질 핵심 의제는 녹색경제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세계기구설립두 가지이다.

 

두 의제는 제64차 유엔총회(2009)에서 채택된 리우+20의 실천목표 세 가지를 달성할 방안으로 선정됐다. 세 가지 목표는, 첫째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정치적 의지와 사명감을 새로이 하고, 둘째, 현재까지의 성과와 지속가능한 발전과 관련된 주요 정상회의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과제를 분석하며, 셋째 재정위기, 식량위기, 기후안보 등 새로운 도전과 위협을 규명해 목록화(list)하는 것이었다. 리우+20의 두 가지 핵심의제 중, ‘녹색경제는 지속가능발전과 빈곤퇴치를 위한 것이라면, ‘기구 설립은 지속가능발전을 범지구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중 녹색경제가 핵심인 데, 이는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지난 20여년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1992년 첫 회의에서 채택된 지속가능발전은 경제개발, 사회발전 그리고 환경보호를 동시적으로 추진하는 통합적 발전개념이다. 그러나 현실의 지배적인 발전시스템은 여전히 경제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나 환경오염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손을 쓸 마땅한 방도가 없다. 이를테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사회적 기회는 계층간, 지역간, 국가간에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자원이용의 비효율성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 오염비용이 재화의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결과, 환경에 부담을 주는 상품소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물과 같은 자원의 상품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자연의 과잉 개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 모두는 결국 지속가능발전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발전시스템의 핵심인 경제의 녹색화 없이는 지속가능발전이 없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는 곧 녹색경제에 관한 관심과 담론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중요한 명분이 되었다.

 

녹색경제(green economy)란 용어는 1989년 영국의 데이비드 피어스 등의 녹색경제를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a Green Economy)’이란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정부는 지속가능발전이 환경보호와 함께 경제성장과 결합될 수 있는 지에 관한 연구를 의뢰했고, 피어스 등은 환경적 배려가 경제, 그리고 정치적 정책결정과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 지를 이 보고서를 통해 밝히고자 했다. 녹색경제는 바로 이 대목에서 사용되었다. , 영국경제에 대한 처방으로, 국가경제에서 지속가능성을 성취하기 위해 환경과 경제정책이 통합하는 게 중요함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녹색경제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한편, UNEP녹색경제를 위하여(Toward a Green Economy)’란 보고서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경제성장, 고용에서의 증가와 함께 빈곤을 감소시키는 경제를 녹색경제라 지칭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경제 전반에 걸친 활동을 곧 녹색경제라 했다. 생태근대화론의 입장을 반영하는 개념으로서 녹색경제는 경제, 사회, 환경시스템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발전으로 가는 한 과정(pathway)으로 간주되었다. 지속가능발전의 3개 축 중에서 경제부문의 녹색화(경제와 환경의 접목)를 우선전략으로 채택하고 중요시하는 입장이 곧 UN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가 녹색경제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녹색경제의 의미규정이 이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녹색경제의 성격은 물론이고 지속가능발전과의 관계설정, 녹색경제에 이르는 이행방안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녹색경제의 의미가 파악되어야 한다. 녹색경제를 바라보고, 나아가 지속가능발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는 사실 입장에 따라 상이하다. 실제 리우+20의 핵심의제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녹색경제의 해석과 실천방식을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과 갈등이 일었다. 크게 보면, 국제회의에서 늘 그렇듯, 이는 주로 선진국과 개도국 간 대립의 양상을 띠었다. 이는 멀리 1992년 리오회의로 거슬러 가지만, 가까이는 2002년 요하네스버그 회의 당시 지속가능발전의 성과를 둘러싼 해석과 처방을 둘러싸고 시작되었다.

 

1992년 리오회의에서 정상들은 지속가능발전을 대안발전 개념으로 채택했고 이후 10년간 각국 정부들은 이를 각국의 최우선 국가발전전략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역설적으로 전지구적 빈곤 심화, 환경 악화 등과 같이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더욱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지속가능발전이 추진되는 1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더 극성을 부렸다.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이념인 신자유주의의 발호가 지속가능성의 구현을 가로막으로 주범으로 주목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원인과 처방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나눠졌다. 선진국들은 자유교역, 개방화, 민주화 부진 등으로 원인을 돌린 반면, 개도국들은 선진국 자본 주도로 세계시장이 개방되고 자본거래가 자유화되며 경제적 목적의 자연 착취형 개발이 범지구화 된데 원인을 둘렸다. 처방에서도 선진국은 자유교역 확대, 개방화, 민주적 거버넌스 등을, 개도국은 자본거래규제, 선진국의 기술이전 및 경제적 원조 확대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있었지만 20022차 정상회의는 국가별 로 지속가능발전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을 권고하는 요하네스버그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후 10년간(2002-2011) 지속가능발전의 이행을 위한 노력과 함께 기후변화 등을 대응하기 위한 대한 논의와 시도가 범지구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글로벌 경제위기는 계속되었고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도 더욱 악화되어 갔다. 이런 와중에서도 각국 정부들은 물질적 부의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제중심 정책운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속가능발전을 앞세우면서 녹색경제가 리우+20의제로 채택된 데는 신자유주의의 득세 속에서 환경과의 상생으로 포장된 경제중심의 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선진국의 의도가 숨어 있다.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녹색경제는 기본적으로 선진국에 적합한 경제모델이다. 녹색기술, 녹색산업, 녹색소비 등 환경을 이용해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은 선진국만 차별적으로 가지고 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들이 녹색경제를 지속가능발전에 이르는 과정(pathway)’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기실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을 녹색경제로 대체하려는 중심국의 계산을 내밀히 반영하고 있다. 경제중심의 발전개념을 대체하기 위해 경제, 사회, 환경을 통합하는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이 도입되었지만, 경제를 우선하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채 결국 녹색을 무늬로만 덧씌운 경제중심의 발전개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녹색경제를 중심의제로 채택하고 세계 각국 정상들을 불러 이를 논의케 하는 리우+20는 선진국 주도의 이러한 회귀를 공식화하는 의식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 주도의 녹색경제 의제는 공교롭게도 MB정부의 녹색성장과 일치하고 있다. 최소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리우+20의 핵심의제인 녹색경제는 녹색성장의 다른 표현에 불과할 뿐, 내용적으로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리우+20가 마치 한국을 위한 국제회의 혹은 한국이 주도하는 국제회의로 비춰지곤 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MB정부 자신도 리우+20 의제 설정 시 한국의 녹색성장을 준거로 적극적으로 제안했고, 또한 의제를 설정하는 각종 국제회의에 대표단을 보내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발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치권자에 의해 녹색성장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채택되어 있는 만큼, 이의 집행을 맡은 정부 담당부처들이 정권의 홍보 차원에서 녹색경제가 리오+20의 의제로 채택되도록 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 리우+20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녹색성장의 홍보 연장선에서 리우+20를 선전하면서 정부의 주도성을 자랑했다. 이를 위해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 MB식 녹색성장이 세계적인 선도모델 인냥 국내외적으로 홍보했다.

 

한국의 녹색성장 이니셔티브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크게 교차하고 있다. 긍정적 평가는 유럽연합과 이태리, 덴마크 등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반면, 부정적 평가는 프랑스와 인도,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일부 개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인도와 중국은 한국이 한국의 어젠다를 우리가 써야 하나하면서 모든 문서에서 녹색성장 단어의 사용을 반대하는 등 녹색성장의 국제사회 적용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MB식 녹색성장에 대한 이중적 평가는 엄밀하게 보면 녹색성장 자체의 적실성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리우+20의 전체 의제와 그 설정방식에 대한 선·후진국간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MB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정부가 추진해 온 녹색성장이 선진국 주도의 리우+20 의제와 일치함으로써, 그 정당성이 대외적으로 사실상 인정받는 행운을 얻게 됐다. 리우+20을 대하는 MB정부는 그래서 물 만난 고기와 같다. 이로 인해 MB정부는 시민사회 중심으로 요구해 온 녹색성장의 정당성과 추진의 민주성 확보에 대한 요구를 회피할 수 있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국내 환경운동진영은 MB식 녹색성장이 녹색세탁을 한 사실상의 토건식 경제성장에 다름 아닌 것으로 줄곧 비판을 해왔다. 4대강을 운하로 만들려다 시민사회의 저항을 직면하자,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녹색성장을 21세기 한국사회의 발전패러다임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녹색성장을 국정의 최우선으로 하는 다양한 시책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해서 녹색성장을 위한 무수한 전략, 계획, 프로그램, 지원법, 프로젝트들이 마련되었지만, 기실 지난 정부가 추진해왔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제도와 성과들은 모두 폄훼를 당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환경부 장관 소속의 것으로 격하시키고, 그 자리에 녹색성장위원회를 설립해 앉혀 놓은 게 그 백미다. 강등된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결국 녹색성장위원회의 한 전문위원회로 편입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나마 녹색성장위원회에는 한국사회를 대변할 진정성 있는 녹색주의자들은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금번 리우+20녹색경제를 지속가능발전에 이르는 한 경로이자 수단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지만, MB정부는 거꾸로 지속가능발전을 녹색경제에 이르는 경로이자 수단으로 자리매김 해 놓은 것이다. 무엇보다 그 동안 추진한 녹색성장의 속내를 봐도 이를테면 녹색뉴딜, 4대강 정비, 원자력 중심 에너지정책 등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모든 국민이 목격해 왔던 바다. 토건식 경제성장이 곧 MB식 녹색성장 혹은 녹색경제의 실체임 셈이다. 환경운동진영이 우려하는 것은 이렇게 모순투성인 MB식 녹색성장에 대해 리우+20가 면제부를 줌으로써 미래에 언젠가 진정한 녹색경제를 추구해야 할 역사적 기회를 또다시 박탈당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그러나 냉철히 들여다보면, 지속가능발전 대신 녹색을 덧씌운 경제중심의 성장과 발전을 다시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 해줄 리우+20식 녹색경제의 모순은 MB(토건식) 녹색성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 전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대한 기대와 달리 리우+20에 대해 국내의 시민사회가 낮은 기대치를 보이는 데는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다. 만약 리우+20MB식 녹색성장 혹은 녹색경제를 정당화 해준다면, 녹색가치 회복을 위한 시민운동은 국내적 모순과 세계적 모순을 동시에 풀어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지게 된다.

 

그렇지만 너무 비관적일 필요가 없다. 세계화시대 환경문제는 이미 일국적이면서 동시에 범지구적으로 풀어야 할 지구촌 사회의 공통 과제가 되어 있다. MB식 녹색성장을 넘어서기 위한 한국의 시민운동은 리우+20식 녹색경제를 대응하는 범지구촌 시민운동과 결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먼저 리우+20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감시와 참여가 지금부터 본격화되어야 한다. 이는 리우+20의 회의 참여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후의 전개과정에 대한 모니터링과 체계적인 대응도 함께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리우+20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시민운동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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