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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7 14:42

포퓰리즘과 환경 2007년2010.09.27 14:42


이슈투데이 칼럼/2007.2.25

포퓰리즘과 환경


조명래(단국대 교수)



 영어 포퓰리즘(populism)은 대중주의, 인민주의, 인기영합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선 인기영합주의란 표현이 가장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는 유권자들로부터 환심을 사거나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데 급급한 우리의 정치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본래 특권적인 엘리트 지배층에 대응하여 인민들의 권리와 권력을 강조하는 정치이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서구정치에서 ‘인민당(populist party)’이 추구하는 정치노선이나 이념적 입장을 지칭해 왔다. 포퓰리즘을 추종하는 자를 포퓰리스트(populist), 즉 대중주의자 혹은 인민주의자라 부르며, 1892년 미국의 인민당원을 부르면서 사용된 말이다. 당시 미국 인민당원은 철도 국유화와 토지소유제한을 내세운 인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1917년 레닌에 의한 소련 공산당 혁명을 이끈 이른바 혁명 전의 집단주의를 지칭하여 포퓰리즘이라고 불렀고 이들 혁명세력을 포퓰리스트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퓰리즘은 진보적 성향의 정치이념을 의미했다.

 

 포퓰리즘은 20세기 들어 유럽이나 남미의 국가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스페인, 포르투칼, 그리스 등에서는 1960, 70년대 개혁적 성향의 정권들이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는 반면 인민대중의 요구(인기)에 부응하는 분배중심의 정책들을 폄에 따라 포퓰리즘이 풍미한 적이 있다. 20세기 포퓰리즘의 전형은 아르헨티나의 전후(post-war) 정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945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은 이른바 ‘페론주의’ 노선을 편 결과, 1940년대 세계 6위 경제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제3세계 국가로 추락했다. 노조의 요구에 부응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펴면서 권력을 유지한 결과, 개혁적 이념을 표방했던 페론주의는 결국 단순한 포퓰리즘, 즉 인기영합주의로 전락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포퓰리즘은 이승만 정권이 전후의 국민 불만 해소와 정권 유지 차원에서 선심형 소비 및 분배 정책들을 폄으로서 일시적 현상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포퓰리즘적 현상이 정치분야에서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한국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포퓰리즘은, 서구정치에서 볼 수 있었던 진보적 성향의 대중주의나 인민주의의 의미가 아니라, 정권의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해 국민들의 환심을 사는 인기 중심의 정책을 펴는 현상을 의미할 뿐이다. 포퓰리즘이 한국에서 인기영합주의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주요 언론들은 개혁정책의 많은 부분이 포퓰리즘적이라고 논평하고 있다. ‘균형․분배․민주’ 등의 진보적․개혁적 이념을 표방하는 정책들을 펴고자 했지만 소수파 정권으로 한계를 직면하자, 국민참여와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현실 타협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노무현정부 하에서 포퓰리즘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규모 개발을 전제하는 국책사업과 관련된 부분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가령, 새만금간척사업, 경인운하건설, 금정산․천정산 터널공사, 북한산터널공사, 방폐장건설, 등과 같은 국책사업들 이전 정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급조된 선거공약으로, 혹은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운 지방자치단체의 비민주적 정책결정을 통해 제시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 국책사업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강한 표퓰리즘적 요소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적 국면에서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국책사업들을 중단하거나 재검토하겠다는 선심형 약속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곤 한다. 후보시절 노무현대통령도 환경단체나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취임하면, 주요 국책사업들의 추진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사업타당성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 취임 후에는  어느 것 하나도 본래의 약속대로 중단하거나 재검토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경과하면서 정부는 사업 대부분을 재추진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거나 방향을 잡아 갔다. 여기에 바로 표퓰리즘적 정치의 요인이 작용했던 것이다.

 대규모 개발을 전제하는 국책사업들에 대해선 지역환경이나 생태계를 심대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국민적인 우려가 있지만, 동시에 지역경제 진흥이나 성장에 적잖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도 있다. 따라서 추진여부가 논란이 되면 환경주의자와 개발주의자 간에 좁힐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이 나타난다. 실제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후 새만금 간척사업, 방폐장건설, 금정산․천정산터널공사 등과 같은 국책사업의 추진여부를 둘러싼 국민적 갈등이 재연하면서 나라 전체가 분열하는 듯 했다.

 

 이는 소수파 정권으로 출범했던 노무현정부에 대해 심각한 도전이었고, 또한 개혁과 진보를 지향하는 정책노선에 뭔가 손질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빌미가 되었다. 이때부터 노무현정부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적 노선 대신 대중추수적인 정치 노선을 취하는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포퓰리즘적 정책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제 2003년 중반을 거치면서, 노무현정부는 정권초기의 ‘분배와 안정’에서 ‘성장과 개발’로 정책기조를 서서히 바꾸었다. ‘소득 2만 달러’로 상징되는 신(경제)성장주의 혹은 경제우선주의가 노무현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성향으로 드러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이 같은 정책성향은 1998년 경제위기 이후 밀려들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란 이념을 일정하게 추종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유시장 경쟁이념을 표방하는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지구화의 중심이념이기도 하다. 첨예해지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경제를 되살려 국민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노무현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기술혁신,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구조조정, 자본시장의 개방, 벤처산업육성 등과 같은 ‘경제 추스르기 최우선 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의 최대치’이기도 했다.

 

 국책사업들이 당초 약속과 달리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경제 성장과 안정화, 그리고 지역개발 등을 선호하는 다수 국민들의 개발주의 욕구에 부응하는, 즉 대중추수적이고 인기영합적 입장을 드러낸 것이었다. 포퓰리즘이 신자유주의와 맞물리고, 국책사업의 재추진을 중심으로 참여정부의 성장정책들이 가동하면서, 과거의 개발주의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다시 말하자면, 참여정부 하에서 신자유주의가 포퓰리즘과 결합하면서 균형발전과 신성장을 내세운 채 국토환경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신개발주의(neo-development)’란 풍조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신개발주의는 60~70년대 국가가 주도적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가운데 풍미했던 개발주의에 조응되는 개념이다. 1990년대 들어 성장시대에 만들어졌던 개발기구나 정책(예, 경제기획원, 경제개발5개년 계획 등)은 폐기되고 경제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도 시장의 자율성으로 대체되는 추세에 따라 개발주의는 퇴색되는 듯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경쟁력을 우선하는 신경제 건설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신성장주의 혹은 경제지상주의가 등장했고, 이는 지구화의 물결을 타고 침투한 시장경쟁 이념인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신개발주의로 나타났다. 때문에 신개발주의는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라 할 수 있다.

 

 신개발주의란 경향은 국책사업들이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추진하게 되면서 나타난 것이지만 노무현정부가 출범하면서 제시한 주요 국정과제들 속에서는 이미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가령, 국가균형발전, 신행정수도건설, 동북아경제중심 등과 같은 핵심국정과제들은 ‘국민적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 즉,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추진되면 하나같이 국토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줄 강한 개발주의 요소를 함축하고 있었다. ‘균형발전’ 과제는 지방별로 지역혁신역량을 도모하는 새로운 산업공간을 건설해야 하고, ‘신행정수도’ 과제는 국토의 중앙에 인구 50만이 사는 신도시를 조성해야 하며, ‘동북아경제중심’과제는 국제 비즈니스 활동을 집적시킬 개방형 경제특구를 국토의 여러 군데 개발해야 했다.

 

 국책사업들이 당초의 약속과 달리 추진 결정을 보류하거나 재추진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 것은 국민들의 개발주의 정서에 영합하는 정책결정가들의 반환경적 정치관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노무현정부는 초중반(대개 2003, 2004년)을 거치면서 기업도시특별법, 지역특화특구법, 골프장 240여개 동시인허가 검토, 경제자유구역법, 신수도권 관리방안, 혁신도시조성, 수도권 신도시건설, 그린벨트 내 국민임대주택건설 등 일련의 신개발주의 정책과 제도들을 양산했다. 국책사업의 재추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신개발주의 정책들은 균형발전, 신성장동력 창출, 일자리 창출,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것으로, 국민의 강한 개발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임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정책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적 신개발주의 정책은 구개발주의 정책과 비교된다. 구개발주의 정책은 국가 혹은 정부의 통치적 관점을 반영한다면, 신개발주의 정책은 민주화와 더불어 점증한 국민들의 강한 개발욕구를 반영한다. 구개발주의 정책은 낙후지역의 개발이나 공공인프라의 건설과 같은 공익을 우선했다면, 신개발주의 정책은 토지의 저렴한 공급, 기술혁신, 경쟁력 강화와 같은 사익을 더 우월하게 반영한다. 구개발주의 정책은 국토환경을 물리적으로 개조하는 데 역점을 두지만, 신개발주의 정책은 국토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즉 ‘국토환경의 상품화’를 추구한다. 구개발주의 정책 하에서 환경문제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과 같은 환경오염을 중심으로 하지만, 신개발주의 정책 하에서는 생물종이 사라지고 환경유해물질이 확산되면서 환경질환이 속출하는 등 생태계의 유기적 파괴를 중심으로 한다.

 

끝으로 구개발주의 정책은 중앙정부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신개발주의 정책은 지방자치의 확산과 더불어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다(예, 서울시의 청계천복원사업).

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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