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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8. 10:04

과학벨트, 법적 선정만이 능사 아니다 2011년2011. 4. 28. 10:04

 경향신문 시론(2011년 4월 27일)

과학벨트, 법적 선정만이 능사 아니다


조명래(단국대 교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의 충청권 입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충청권 맞춤공약이다.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 생생하지만, 대통령은 연초 방송좌담에서 과학의 미래를 위해 ‘법의 절차에 따라 과학벨트 입지를 정하겠다’고 했다. 법에 의한 선정이 과연 입지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과학의 미래와 과학을 통한 국토균형발전을 담보해줄까? 정부 주도의 평가과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법에 의한 선정은 기껏해야 충청권에 대한 정치적 약속 폐기를 정당화해줄 뿐이다.

1년 전만 해도 정부는 충청권의 입지 탁월성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러던 정부가 충청권 입지를 포기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법에 맡겨 선정하는 절차로 들어갔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에 따른 속 좁은 정치적 보복 말고는 충청권 입지 우위성이 사라질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과학벨트법 자체도 날치기로 제정되었다. 공론화를 결여한 채 만들어진 법 규정은 정치적으로 오염되지 않는 입지 선정을 담보해줄 장치가 못 된다.

그나마 법에 의한 절차를 밟기도 전에 과학벨트 입지를 둘러싼 지역갈등이 비등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지역주의 갈등은 모든 정치적 에너지를 흡수해 버린다. 여러 지역이 과학벨트 유치에 참여하게 되면서 충청권의 목소리는 줄어든 반면, 선거에 영향을 줄 비충청권(특히 영남)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고 있다. ‘과학벨트의 정치화’가 더욱 노골화되는 상황에선 법에 의한 공정한 선정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능하더라도 깊은 상처만 남기게 된다.


충청 입지 약속 폐기 정당화할 뿐

과학벨트의 입지는 과학의 미래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배려하는 합리적 정책기준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정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39개 시·군으로부터 53개 후보지를 사실상 신청받았다. 부지의 최소 규모를 100만평에서 50만평으로 임의 축소한 뒤 최소한 조건을 갖춘 부지를 보고하도록 함에 따라 지역 간 유치경쟁만 부추겼다. 전수조사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충청권 기득권을 물타기하기 위한 의도와 무관치 않다.

53개 부지에 대해선 과학벨트기획단이 1차 정량평가를 통해 10개 후보지를 선정하면 민간인들로 구성되는 입지평가위원회가 2차 정성평가를 한 결과를 합쳐 5월 중순 5개 후보지를 도출한다. 이 모든 과정은 비공개로 이루어진다. 가중치 점수도 최종 입지 선정 시까지 입지평가위원에게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이러한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벨트위원회는 ‘그룹형 혹은 분산형’으로 할 것인가를 포함한 최종 입지를 선정하게 된다.

과학벨트법 제9조는 ‘연구·산업 집적도’ ‘정주환경’ ‘부지 확보 용이성’ ‘접근성’ ‘지반안정성’ 등 5가지 입지 선정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은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역별 과학벨트 입지 선정 시뮬레이션 평가 때의 것과 유사하다. 당시 대전·충청권이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정부는 과학벨트법에 따라 입지평가를 다시 하겠다는 것이다. 법상의 평가 기준과 절차는 나무랄 데 없더라도, 문제는 현실적으로 법상 기구나 평가절차의 운영이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고 위원회는 정부의 입장을 내밀히 반영하는 식으로 입지 선정의 기준과 평가절차를 운용할 것이다. 평가과정은 그래서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질 것이 뻔하다. 세종시 수정안을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되었던 ‘세종시민관합동위원회’가 반면교사다.


공약 불이행 MB책임 분명히 해야

과학벨트의 입지 문제가 고도로 정치화되어 왔기 때문에 과학의 미래를 핑계 삼아 법적 절차에만 맡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법의 규정과 절차 문제로 들어가기 전에 과학벨트의 정치적 약속 이행에 관한 대통령의 책임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충청권 입지를 존중한다는 전제하에서 투명한 평가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날치기로 제정된 과학벨트법도 과학벨트의 ‘과학’적 조건을 올바르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법 규정에 따른 평가절차를 걸친다면 위원회 구성, 평가기준 및 평가방법의 선정, 평가과정의 감시감독, 평가결과의 처리와 해석 등에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과학벨트의 입지 선정은 기초과학 육성을 통해 국토균형발전을 이끌어내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법상 평가기준과 절차는 이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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