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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13/내셔널트러스트 매거진 글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이야기

국민들이 향유하는 역사‧자연 공원, 클럼버 파크 (Clumber Park)

조명래 (단국대 교수,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영국 내셔널트러스트(NT)의 사이트 (site) 중에는 권문세가들이 소유했던 ‘넓은 정원이 딸린 대저택’, 즉, 전원 대저택(country house)이 유독 많다. 전국 어디가도 지방별로 이런 유의 대저택들이 즐비한 데 하나 같이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우리로 치면 국가지정 문화재급이지만 NT란 민간단체에 의해 영구 보전‧관리되고 있다. 보전관리란 측면에서 NT가 하는 일은 영국 정부를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을 가진 영국 NT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대저택에 딸린 넓은 정원을 영어로 파크(park)라고 부른다. 파크의 우리말은 공원이다. 국어사전에서 공원은 ‘공중의 보건·휴식·놀이 등을 위해 동산처럼 만든 곳이나 또는 그렇게 이용하는 자연 동산 및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정의되어 있다. 개인 소유의 영국의 대저택에 부속된 파크는 대개 초지나 숲으로 조성되어 있고, 풍경정원, 사냥터, 놀이공간(pleasure grounds) 등 귀족집안의 사적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점에서 국가가 소유하거나 관리하고 있는 우리식 공원과는 개념이 다르다. 하지만 NT 소유의 파크는 예외다. NT란 민간단체가 소유하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이 찾고 휴식을 취하는 공공용도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NT 소유의 파크는 명실상부한 ‘공원’이다. 국립공원과 같은 우리 식 공원은 공공(정부)에 의해 지정‧관리되고 있는 일종의 공공재에 해당한다. 이에 견주어, 영국 NT 소유의 파크는 사유재이면서 영구보전과 공공적 이용이란 측면에선 우리의 공원 보다 훨씬 더 공공재적을 성질을 가지고 있다.

사유재이면서 공공재로서의 성질을 띠는 것은 NT식 파크가 ‘시민들의 성금과 기여로 확보되고, 또한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영구‧보전되고 있는 자산’, 즉 시민유산(civic heritage)이기 때문이다. NT식 파크의 이러한 특징은 NT 운동의 원리를 온전히 반영한다. 120여 년 전, 옥타비아 힐(Octavial Hill) 여사가 처음 구상할 때 NT운동은 그녀가 평생 동안 해 왔던 빈민운동의 한 연장이었다. 힐 여사는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나눠주고 배울 기회를 주는 만큼이나 이들이 쾌적한 환경 속에 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겼다. 귀족들이 소유한 정원이나 공원을 개방해 가난한 사람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그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하자는 힐 여사의 발상이 곧 영국NT가 태동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영국 NT식 파크는 NT운동의 이러한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국 NT가 소유한 파크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이용자가 가장 많은 것의 하나가 클럼버 파크(Clumber Park)라는 공원이다. 이 파크가 있는 지역은 런던으로부터 북쪽으로 2시간 떨어진 동중부 지역(East Midlands)의 노팅햄셔(Nottinghamshire)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노팅햄셔 내에서도 북쪽에 있는 워크솝(Worksop)이란 지역의 ‘더 듀커리스(The Dukeries)’란 곳에 클럼버 파크이 자리하고 있다. 듀커리스는 ‘공작(Duke)령의 땅들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영국의 잉글랜드(England) 지역에는 평균적으로 매 2개의 군(county) 마다 1개의 공작령 땅이 있다. 그러나 이곳 듀커리스에는 무려 4개의 공작령 땅이 얼마의 거리를 두고 몰려 있다. 뉴카슬 공작(Dukes of Newcastle) 소유의 클럼버 대저택(Clumber House), 킹스톤 공작(Dukes of Kingston, 후 Manvers백작) 소유의 토레스비 대저택(Thoresby House), 포트랜드 공작의 엘벡 사원(Welbeck Abbey), 노폭 공작(Dukes of Norfolk) 소유의 워크솝 저택(Worksop Manor) 등이 그러하다. 클럼버 파크는 뉴카슬 공작이 소유했던 클럼버 대저택에 딸린 파크(park)를 말한다.

1086년 영국왕 윌리엄 1세에 의하여 작성된 전국적인 토지대장을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이라 부른다. 영국의 대표적인 토지기록물이다. 이 기록물에 의하면, 파크가 있는 클럼버는 중세까지만 해도 수도원이 소유하고 있던 땅이었다. 그러다가 1709년 ‘뉴카슬 공작(Duke of Newcastle)’으로 작위를 받은 존 홀레스(John Holles)의 소유로 넘어갔다. 홀레스는 클럼버의 ‘셔우드 숲(Sherwood Forest)’ 일부를 ‘파크(park)’로 조성할 수 있는 허가(license)를 당시 엔(Ann) 여왕에게 요청했다. 사냥터를 만들어 여왕을 섬기겠다는 것이 이곳을 파크로 조성하고자 했던 이유였다. 여왕의 제가를 얻은 홀레스는 사슴 등을 방목하는 사냥터로 파크를 만들면서 중앙부에 사냥 막사(hunting lodge)도 건립했다. 홀레스는 1711년 사망했고, 클럼버 파크는 조카인 토마스 펠함(Thomas Pelham)에게 넘겨졌다. 펠함은 1715년 ‘제1대 뉴카슬 업온 타인(1st Duke of Newcastle-upon-Thyne) 공작’이 되었고, 그리고 1756년엔 ‘제1대 뉴카슬 언더 라임 공작(1st Duke of Newcastle-under-Lyme)된 인물이다. 그 이후 펠함 집안은 후자의 작위(뉴카슬 공작)를 대를 이어 세습해 갔다.

왕의 제가를 받아 사냥터로 조성되었던 클럼버 파크는 약 2세대가 흐른 18세기 중반 무렵 펠함 집안의 중심거처로 변경되기 시작했다. 그 첫 작업은 제1대 뉴카슬 공작이 1759년 파크 내의 기존의 사냥막사를 대저택(mansion)으로 확장하고 개조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풍광이 좋은 클럼버 파크 중심부, 폴터 강(River Poulter)변에 건축가 스테픈 라이트(Stephen Wright)가 설계한 클럼버 대저택(Clumber House)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사가 본격화되어 완료된 것은 제2대 뉴카슬 공작(1720-94)에 의해서였다. 기록에 의하면, 클럼버 대저택은 실제 1767년-1770년 사이 완공되었다. 16세기 이탈리아 건축(Andrea Palladio)의 이름을 딴 팔레디오 풍으로 건립된 클럼버 대저택은 당시로선 영국 전역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귀족저택이었다.

클럼버 파크는 제2대 뉴카슬 공작 기간 동안 주로 꾸며졌다. 근 20여 년 동안 그는 클럼버 파크 내에 다양한 정원 시설물을 설치하고, 또한 파크의 핵심인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인공호수는 클럼버 파크 중심을 흐르는 강을 개조해 만들어졌는데, 무려 15여년이 소요되었다. 그 이후에도 클럼버 파크는 지속적으로 가꾸어졌다. 제5대 뉴카슬 공작이 주인으로 있던 1850년대, 클럼버 대저택은 이탈리안 스타일로 더욱 화려하면서 정교하게 개조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인공호수 동편에 장원 부속의 하드윅(Hardwick) 마을이 조성되었고, 파크 내에는 놀이 공간(pleasure grounds)도 조성되었다.

제 7대 뉴카슬 공작이 새 주인이 되던 해인 1879년, 클럼버 대저택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후에 보수하면서, 저택의 중앙부가 찰스 베리(Charles Barry)란 건축설계가에 의해 증축되었다. 불행하게도 클럼버 대저택은 1912년 다시 화마에 휩싸였고, 이후에 북측 상층부가 대대적으로 증‧개축되었다. 1886년, 제7대 뉴카슬 공작은 클럼버 파크 내에 3번째 교회인 고딕풍의 성모마리아 교회(Chaple of St. Mary)를 건립했다. 그러나 주인인 제7대 뉴카슬 공작이 1908년 런던 근교의 윈저(Windsor)에 있는 포리스트 팜(Forest Farm)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클럼버 파크는 사실상 방기되다시피 했다. 이 기간 동안 집안의 경제적 사정도 급격히 나빠졌다. 1928년 제7대 뉴카슬 공작이 죽자, 그의 미망인은 클럼버 대저택을 폐쇄했고, 클럼버 파크의 관리도 인근 주민들에게 맡겼다. 제1차 대전과 대공황을 겪는 동안, 경제적 상황의 악화로 파크(저택포함) 관리가 그만큼 힘들어졌던 것이다.

제7대 뉴카슬 공작이 죽자, 그의 7번째 형제가 제8대 뉴카슬 공작이 되지만 과중한 상속세 때문에 장원을 상속받지 않은 채 아들인 링컨 백작(Earl of Lincoln)에게 관리를 맡겼다. 대저택을 포함한 클럼버 파크는 더욱 황폐화 되었다. 링컨 백작은 경제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1937년 대저택의 소장품을 모두 처분 한 뒤, 1838년 대저택을 결국 해체해 버렸다. 해체할 당시엔 언젠간 부지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클럼버 파크가 영국 전쟁성(War Department)에 의해 징발되면서 그 꿈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징발된 클럼버 파크는 탄약고, 참호설치기계의 실험장 등으로 활용되었다. 1943-1945년 사이엔 독일과 이탈리아 전쟁 포로들이 이곳에 수용되어 여러 노역을 수행했다.

2차 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클럼버 파크는 영국 NT 손으로 넘어갔다. 1946년 6월6일, 영국 NT는 클럼버 파크의 3764 에이커(약 460만평)에 대한 소유권을 7대 뉴카슬 공을 대표하는 개인(Personal representatives of the 7th Duke of Newcastle)과 런던 및 포트 조지 토지회사(London and Fort George Land Company Ltd.)로부터 정식으로 획득했다. 전쟁기간동안 군 주둔지로 황폐화 될 대로 된, 이 역사 깊은 파크를 그냥 두게 된다면, 다른 용도로 개발되거나 사라질 상황이었다. 이에 영국 NT는 클럼버 파크의 보전을 위한 대중설득(public appeal)에 나섰고, 또한 매입을 위한 모금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렸다. 전쟁이 끝난 뒤라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십십 일반 돕는 데 발 벗고 나섰다. 실제 매입단계에서는 주빌리 기금(Jubilee Funds)과 인근 5개 지방정부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크게 받았다.

당시 클럼버 파크만 매입하고 보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연 및 문화유산들이 절박한 훼손의 압력 하에 있었다. 영국정부는 20세기 초반부터 영국 귀족들이 소유한 대저택 등의 자산상속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겼다(최대 80%). 클럼버 파크도 제7대 뉴카슬 공작 이후 기울어진 가세와 과중한 상속세 때문에 다음 소유주에게 승계되지 못한 채 지역주민들의 손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제2차 대전이 터지면서 클럼버 파크는 전쟁물자로 징발되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정부는 상속세를 내지 못하거나 높은 관리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대저택들을 영국 NT가 전쟁기금 등으로 비축해 놓은 재원을 이용해 매입하고 보전할 수 있는 정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덕택에 영국 NT는 2차 대전 전후로 보전가치가 큰 전원 대저택들을 대거 확보할 수 있었고, 이들은 현재 영국 NT가 소유한 시민유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소유주들이 보전을 위한 협약을 맺고 NT에 자발적으로 기증한 경우도 적지 않다.

클럼버 대저택은 아직까지 복원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저택 부속 건물과 시설들은 대부분 소중한 자연 및 문화유산으로 NT에 의해 관리‧보전되고 있다. 고딕식 클럼버 교회(Clubmer Chaple), 벽으로 둘러쳐진 부엌 정원(walled kitchen garden)을 포함한 정원시설(12 에이커), 뱀의 모양을 한 호수(90에이커), 3마일에 이르는 두 겹의 라임 나무 길(유럽에 가장 김), 목재를 생산하는 임야지(woodland, 2240 에이커), 농장(500에이커), 파크랜드‧히드군락지‧초지 (1025 에이커) 등이 현재 클럼버 파크 내에 있는 보전자산의 목록이다. 이 드넓은 파크의 자연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영국정부는 클럼버 파크의 3분의 1을 ‘특별과학관심지역(Site of Special Scientific Interest)’으로 지정했다. 우리로 치면 생물종보전지역과 같은 곳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클럼버 파크는 ‘영국 공원 및 정원유산 등록부(English Heritage Register of Parks and Gardens)에 제1등급 역사적 경관지(Grade 1 Historic Landscape)’로 등재되어 있다. 클럼버 파크의 자연경관은 그 자체로서 높은 역사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클럼버 파크는 영국 NT의 동중부(East Midlands) 지역사무소(regional office)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구간 시설을 개조해 지역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다. 동중부 지역의 NT는 총 26만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고, 3,500명의 자원봉사자를 채용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지역경제에 대해 ‘1백만 파운드(200억원) 상당의 일’을 창출해내고 있다. 동중부 권역 내에 NT가 소유하고 있는 땅은 총 2만 헥타르에 이른다. 매년 3만 명의 학생들이 관할 구역 내의 여러 NT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 지역 NT가 만들어내는 한 개의 일자리는 지역경제 내에 5-9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방식 등으로 동중부 지역 NT가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총 경제적 가치는 1천600만 파운드(3,200억원)에 달한다.

클럼버 파크는 총 면적이 460만평에 이를 정도로 영국 내에서 가장 큰 전원 공원(country park)에 속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클럼버 파크의 자연을 찾아 휴식을 취하거나 그 곳의 자연 및 문화유산을 관람하거나 이용하고 있다. 산책코스, 캠핑, 사이클링, 문화공연장, 전시장, 자연학습장, 결혼식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클럼버 파크는 일반 시민들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 영국 NT 사이트 중에서 클럼버 파크는 가장 많은 시민이 찾는 사이트다. 실제 연간 방문객이 200만 명을 넘는다. NT창설의 목적은 자연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국민 모두가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이 가장 충실하게 실현된 곳이 곧 클럼버 파크가 아닌가 싶다.<끝>

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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