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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12:48

누구를 위한 ‘공정한 사회’인가? 2010년2010.09.10 12:48


<시민사회신문> 시론 글/2010.9.9

누구를 위한 ‘공정한 사회’인가?

조명래(단국대 교수, 환경정의 공동대표)

딸의 온당치 못한 특채로 외교통상부 장관의 목이 단박에 날아갔다. 행안부의 감사에서 채용과정 자체가 불법이었고 딸의 응시가 장관에게까지 보고된 사실도 드러났다. 장관의 해임은 당연했다. 그러나 여기에 큰 의문이 있다. 떳떳하게 변명하던 장관이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리고 옷을 벗도록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외교통상부의 특채가 특혜성 채용이란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닌 데 왜 갑자기 논란이 되었을까?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공정성의 문제를 걸어 장관을 옷 벗도록 했을까? 답은 대통령 말 한 마디다. ‘장관의 생각은 냉정할 정도로 엄격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일침이 장관으로 하여금 옷을 벗게 했다.

지금 이 나라는 뜬금없는 ‘공정한 사회’ 논쟁으로 소란스럽다. 기회‧자원‧권력을 공평하게 나누어 갖는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회를 누가 원치 않겠나?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류 역사는 그러한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줄곧 흘러 왔다. 현실사회는 항상 공정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것이 현실사회다. 있는 자들이 누리는 기득권은 역설적으로 현실사회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지된다. 우리의 현실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 논객은 ‘이 사회의 절반은 누구를 막론하고 페어 플레이(fair play)만으로 살아 왔다고 양심선언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마당에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요구는 기존 사회의 권력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읽혀지기 십상이다. 그 요구는 불만세력의 불순한 책동으로 간주되어 권력으로부터 탄압을 자초할 수 있다. 그래서 공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있는 자들이 솔선수범하여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하고 기득권의 많은 부분을 흔쾌히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는 상태에서 논의되는 ‘공정한 사회’는 구호일 뿐이다.

논란이 되는 ‘공정한 사회’란 말은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정권 후반기 국정운영 기조로 삼겠다고 했다. 얼마 뒤 치러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이 추천한 국무위원 후보 중 다수는 공정한 룰을 지키지 않고 살아온 행적을 보였다. 몇몇은 이로 인해 낙마했다. 이를 두고 비판언론들은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주창이 ‘허당’이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이 커지면 공정한 사회를 내건 정권의 후반기 국정운영은 위태로울 수 있다. 장관 딸 특채사건은 이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다. 장관이 옷을 벗은 것은 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예방조치였다. 공정성이 권력자의 필요성에 따라 해석되고 강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관 딸 특채 사건은 그래서 공정성 자체가 아니라 공정성의 여부를 ‘누가, 어떻게 판별하고 강제 하느냐’에 관한 일련의 물음을 제기했다. 공정하지 못해 사회적 핍박을 겪는 세력이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기득권을 옹호하던 집권세력이 주창하고 있다는 데, ‘공정한 사회론’의 모순이 있다. 집권세력이 추진한 정책들은 공정한 사회와는 대부분 역행했다. 고소영 라인의 인사정책, 2%의 있는 자를 위한 부동산 정책, 극우 반공주의에 치우친 대북정책, 있는 자들이 혜택을 더 누리는 교육정책, 노골적인 기업 프랜드리 정책(예, 삼성 이건희 전회장의 특별사면), 시민을 배제하는 사회정책, 균형발전을 거부하는 국토정책 등이 그러하다.

불공정한 특채만 하더라도 정권차원에서 광범위하면서도 무자비하게 자행되었던 일이다. 임기도 끝나지도 않는 책임자를 오만가지 편법을 동원해 몰아낸 뒤, 그 자리에 능력과 무관한 ‘자기 사람’을 심어온 게 이 정권의 인사정책이었다. 정권에 의해 자행된 구조적 불공정 특채와 견준다면 장관 딸의 불공정한 특채는 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에게만 유독 ‘불공정성’의 책임을 물어 물러나도록 한 것은 공정하지 못한 정권이 공정하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술수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한국사회를 진정한 공정한 사회로 만들어가겠다고 한다면, 그의 정권이 저지른 ‘불공정성’을 먼저 반성하고 대대적으로 척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불공정한 정책들을 공정한 정책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불공정한 제도와 정책을 그대로 둔 채 공정한 사회를 주창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상징적 지지를 얻어 지배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하기 위한 목적 이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있는 자를 위한 공정한 사회가 되면, 불공정성이 더욱 판치는 세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끝>

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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