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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를 찾아서


조명래(단국대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시민들이 낸 돈으로 훼손에 처한 자연 및 문화유산을 확보한 후 이를 시민의 이름으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면서 후손에게 남기는 시민운동이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다. 언론이 가끔씩 ‘땅 한평사기’로 소개하기도 한 새로운 시민보전운동이다. 우리말로 ‘국민신탁운동’이라 부르는 이 운동은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선 200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발족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가도, 개인도 지킬 수 없어, 그래서 곧 멸실 될 자연 및 문화유산을 시민들이 나서서  매입해 우리의 ‘공동의 자산’(‘시민유산’이라 하기도 함)으로 만드는 이 운동은 이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의 하나다. 그간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거둔 크고 작은 성과는 이런 점에서 참으로 값지고 보람찬 것이다. 그러나 저러한 운동에 보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법제도적 틀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 운동에 날개가 달리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2006년 초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이 법에 의해 ‘문화유산신탁법인’과 ‘자연환경신탁법인’ 설립을 위한 두개의 위원회가 현재 구성되어 활동 중이다. 이 위원회의 책무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정신과 원칙을 우리 사회에 올곧게 실현하는 것을 돕는 수탁기구로서 국민신탁법인을 창설하는 것’이다. 참여위원들은 대부분 이 책무를 제대로 실행하기 앞서 운동의 원조이자 세계적인 모델인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필수로 여겼다.

 지난 11월19일부터 25일 5박7일간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방문이 이렇게 해서 성사되었다. 자연환경신탁법인 설립위원회 발의로 이루어졌지만, 이번 방문에는 문화유산신탁법인 설립위원회, 환경부와 문화재청, 그리고 한국내셔널트러스 관계자까지 합류해, 무려 17명이란 대부대가 방문 길에 올랐다. 참여자 대다수는 그간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참여해 오면서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를 꼭 한번 봤으면 하는 꿈들을 가지고 있었다. 금번 방문은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을 떠났다.

 1999년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최초로 제안했던 필자에게 이번 방문이 사실 4번째였으니, 방문에 대한 기대보다 ‘어떻게 하면 참여자들에게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또한 이를 계기로 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도와주느냐’가 관심사였다. 연세가 드신 분도 많고 또한 동절기여서, 이번 방문 일정은 상대적으로 짧게 잡혀있었다. 일정은 모두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담당자와 필자 간에 전자메일을 통해 정해졌다.

 첫날 일정(11월20일)은 스윈돈(Swindon)에 있는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본부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오전 10시부터 매 1시간마다 주제를 달리해 영국 내셔널트러스트의 역사, 조직, 운영방식, 자산관리 등에 관한 내용을 감명 깊게 소개받았다. 1895년에 세 사람의 선구자에 의해 발족되고, 1907년 내셔널트러스트법이 제정된 후,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크게 준비기(이차대전 전까지), 도약기(이차 대전 후  1970년대까지), 안정기(1980년대부터 지금까지)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시민보전단체로 발돋움했다. 

  현재,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25만 헥타르(2,500평방 킬로미터)의 땅, 700마일의 해안선, 2만 개 이상의 건물, 700여개의 농장, 연간 예산 1억7천백만 파운드(약 3천 억원), 회원 340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 최대 민간보전단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부가 해야 할 엄청난 일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민간이 정부를 능가하는, 이러한 공익적 활동이 가능한 것은 영국의 자유주의(국가가 간섭하지 않고 민간/시장의 자율성에 맡기는 정책이념)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늦은 오후엔 내셔널트러스트 본부 건물을 둘러봤다. 이른바 녹색빌딩으로 설계되어 건축부문의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한 본부 건물은 그 자체로서 영국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혼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날은 영국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적 뿌리로 여기는 스톤헨지(Stonehenge)를 방문했다. 신석기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거대한 구조물은 태양신과 연계된 거석문화의 진수를 주는 것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공구조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문화재청과 같은 기관인 ‘잉글리쉬 헤리테지(English Heritage)’가 이 유물을 소유하고 있고, 내셔널트러스트 주변의 광활한 초지 생태계를 보전하는 일을 맡고 있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문화와 자연을 함께 묶는 통합적 보전운동을 택하고 있는 데, 이는 문화유산신탁법인과 자연환경신탁법인으로 나누어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크게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오후엔 영국에서 가장 웅장한 성당의 하나인 ‘솔즈베리(Salisbury) 대성당’을 방문했다. 그곳엔 영국 헌법의 기초가 된 마그나카르타(대헌장)가 보관되어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우리는 ‘시골선술집(country pub)’을 들러 로컬맥주를 곁들인 영국식 점심을 맛있게 들었다. 솔즈베리 성당 방문을 끝낸 뒤, 우리는 숙소가 있는 바스(Bath)로 향했다. 바스는 영국이 로마의 식민지 통치를 받을 당시 만들어졌던 도시로서, 그곳엔 로마시대 지어진 대규모 대중목욕탕이 역사유물로 남아 있고, 도시전체에 아름다운 석조건물들이 즐비하다.

 세 번째 날(11월22일)은 6천 년 전 신석기 유적지(거석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대규모 무덤)가 있는 에브베리(Avebury)를 방문했다. 유적지가 넓다 보니 농장형태로 보전 관리되고 있고, 또한 출토된 유물을 포함한 지역 토속 유물이 여러 시설에 나누어 전시되어 있으며, 지역 전체가 하나의 보전경관으로 관리되고 있었는데, 이 모두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내셔널트러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곳의 책임자와 미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역사유물 보전방법과 관련하여 ‘관주적인 한국’과 ‘민주도적인 영국’을 비교하는 짧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후엔 16세기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레이콕(Lacock)을 들렀다. 도착하자마자 마을의 가장 오래된 선술집에서, 벽난로의 불에 몸을 대피면서 우리는 다소 늦은 점심을 들었다. 돌로 지어진 집들로 구성된 이 마을 전체는 이차대전까지만 해도 그곳의 영주였던 탈봇가(Tabot)가 소유했다. 그 영주가 살았던 집이 마을 동편에 있는 레이콕 사원이다.  이 사원은 1232년에 지어졌고 1539년까지 수도원으로 사용되다가 1550년 개인저택으로 전환되었다. 영국의 화학자이며 사진술의 개척자인 탈봇(Talbot, William Henry Fox)의 저택이기도 한 이 사원은 1944년까지 탈봇가의 소유로 있다가, 과도한 관리비용과 세금 부담 때문에, 내셔널 트러스트에게 기증되었다. 이 때 이 사원과 함께 마을 전체가 내셔널트러스트 소유로 넘어갔다. 내셔널트러스트가 이 마을 보전하는 방법은 독특하다. 마을에 본래 살았던 사람들의 직계자손들이 집과 마을의 풍습을 그대로 지키는 조건으로 임대하여 살게 함으로써 마을의 건축물 뿐 만 아니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양식까지 함께 보전하고 있다. 그 마을의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은 내셔널트러스트의 이러한 보전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운동이 다시 한번 소중하게 느껴졌다. 참고로, 1944년 내셔널트러스트로 기증되기 전까지 살았던 탈봇가의 주인은 사원에 들어오는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효과를 보고 카메라를 발명했다. 지금도 레이콕 사원의 입구에 있는 건물엔 사진박물관이 있다. 레이콕 사원은 영화 ‘헤리포터’의 촬영 세트로 사용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아쉽게도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의 시설들은 동절기 동안 폐쇄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레이콕 사원 내부를 볼 수 없었다(필자는 수년전에 방문해 그곳의 내셔널트러스트 책임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음). 일행은 정원이 딸린 찻집에서, 영국의 오후 티 타임(tea time: 보통 오후 3시 반 정도)에 맞추어 ‘스콘(영국 서남부지역 특산인 빵)을 곁들인 차’를 마신 뒤 마을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 그곳을 떠났다.

 


 넷째날(11월23일)은 글로세스터셔(Gloucetershire County)에 있는 에브워스 농장(Ebworth Farm)을 방문했다. 숙소가 있던 바스(Bath)에서 그곳까지는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는데, 가는 동안 영국 서남부 지역의 아름다운 농촌 경관에 우리는 모두 심취했고, 특히 비가 오락가락 하는 동안 지평선 위로 크게 떠오른 무지개에 매료되기도 했다. 영국의 전통적인 친환경적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또한 숲(의 생태계와 경관)을 보전하는 것이 그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의 내용이다. 농장을 개조한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곳의 활동 내용을 소개받은 뒤, 일행은 비를 맞으면서 한 시간 이상 질펀한 숲길을 걸었고, 걷는 동안 그곳에 이루어지는 숲 보전활동을 들었다.

  산 능선을 한 두 차례 오른 뒤, 우리는 웨일즈(Wales)산으로 불리는 덩치가 큰 검은 소가 방목되고 있는 초지에 당도했다. 그곳에 초지가 조성되어 있었던 까닭은 단순히 소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지방에서만 자생하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지키기 위한 설명을 듣고 우리 모두는 내셔널트러스트의 혼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초지가 있는 언덕에서 굽어보는 아래엔 오래된 전원마을이 있었다. 마을 선술집에서 우리는 스윈돈 본부에서 달려온 세레나(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직원)가 사준 영국식 ‘소고기 슈트’로 맛있는 점심을 들었다. 물론 지방산 맥주를 곁들이는 것도 있지 않았다.

 이것으로 내셔널트러스트 방문의 공식일정을 끝나고, 오후에 우리는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가는 길에 코츠월드(Cotsworld)(런던으로부터 2시간 떨어진 서쪽 지역의 나즈막한 구릉에 동화 속에 나올 듯한 16세기 마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있는 마을 하나인 바이베리(Bibury)를 들렀다(필자는 두 번째 방문이었음). 송어 회귀지역으로 유명하고, 또한 자연습지와 송어번식장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이곳에도 어김없이 내셔널트러스트 사이트(보전 습지)가 있었다.

 

 

 마지막 날(11월24일)은 모두 런던을 자유롭게 관광 했다. 하이드 파크, 국회의사당, 트라팔가스퀘어, 웨스트민스터사원, 런던타워, 대영박물관, 차이나타운 등 하루 동안 여러 군데를 둘러봤다. 저녁 8시5분, 런던 히드로 공항을 떠나 우리는 이튿날 오후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소 지친감이 없지 않았지만, 참가자 모두는, 지난 5일간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를 둘러보면서 가졌던 진한 ‘감동’에 취한 모습이었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를 창설했던 설립자들은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던, 그러면서 멸실되는 상황에 있던 영국의 아름다운 정원과 저택을 매입 한 뒤, 이를 시민유산으로 보전하는 차원을 넘어, 국민 모두가 와서 즐길 수 있는 ‘안락의자’와 같은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말하자면,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시민유산으로 보전하는 것과 함께, 보전을 통해 얻은 ‘혜택을 국민에게(benefit to the nation)’ 돌려주는 것을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우리가 맛보았던 스톤헨지 유적지의 장엄함, 레이콕 마을의 고색창연함, 에브워스 농장 숲의 신비감 등은 내셔널트러스트 사이트를 방문할 때 누리게 되는 ‘혜택’인 셈이다. 그러한 혜택이 가능한 것은 자본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저러한 자연 및 문화유산을 국민들이 주머니를 털어 하나하나 사 모으고, 또한 자발적으로 보전하고 관리해 온 덕분이다. 시민들의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법’이다. 1907년 제정된 이 법에 의해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어떠한 경우도 자산의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이른바 양도불능의 권한을 누리게 되었다. 이 권한에 의해 심지어 영국의 정부조차도 내셔널트러스트의 자산을 건들 수 없다. 부득하게 건들어야 한다면 국회의 3분의 2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로써 시민들이 애써 모은 내셔널트러스트 자산은 현세대는 물론 미래세대까지 공유하는 명실상부한 ‘시민유산’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내셔널트러스트의 시대를 활짝 열 때에 와 있다. 시민운동 중에서 내셔널트러스트는 국민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시민운동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이 운동이 본격화된 지 불과 5년 만에 법이 제정된 것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제정된 사례가 되는 데, 이는 그 자체로서 이 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내셔널트러스트의 정신과 원칙을 얼마만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또한 얼마만큼이나 이를 우리 사회에 실현하고자 하는 지를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금번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방문은 이러한 성찰과 동시에 분발의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확신한다.<끝>


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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