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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5 10:57

올림픽과 롤림픽의 화합 2011년2011.07.15 10:57

<시민사회신문> 시론 칼럼/2011.7.14

올림픽과 롤림픽의 화합


조명래(단국대 교수, 한국NGO학회장)


마침내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3수 끝에 성공했으니, 선정의 기쁨은 더 없이 크고 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쁨을 잠시 뒤로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이토록 평창 동계 올림픽에 매달릴까? 경제적 효과, 국가 이미지 개선, 국민단합, 지역발전, 동계 스포츠 발전, 해냈다는 국민적 긍지감.... 이 모두가 올림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이고 편익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효과와 편익이 과연 실체가 있는건가?

 그리스에서 시작된 올림픽은 글자그대로 스포츠 축제이니 그 자체로서 의미를 받아드리고 즐기면 된다. 그것이 최대의 효과이고 편익이다. 스포츠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니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화된 올림픽은 그리스 시대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스포츠 축제라 하기엔 돈과 권력의 잔치이고 강대국과 약소국을 나누는 게임이다. 올림픽에서 승리하기 위해 참여선수를 양육해 스포츠 기계로 만들고 승리를 둘러싼 돈과 권력의 다툼장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까지 추진했던 배경, 선정을 위한 준비과정, 선정의 효과가 해석되고 활용되는 측면, 개최지가 개발되는 방법, 행사 후 시설 관리 등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문제’들이 오롯이 보인다. 


 평창동계 올림픽 아이디어는 지역개발의 관점에서 처음 제시되었다. 강원도 산골짝에도 개발의 바람이 절실했고 지역 정치인(도지사)들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동계 올림픽 카드를 던졌다. 표로 사는 단체장들이 상징성이 큰 국제행사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유치 경쟁을 통해 지역주민을 동원하며, 유치를 치적으로 삼아 재출마하는 프레임에 갇혀서 평창 올림픽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것이다. 표가 되니 저질러 놓고 보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이번 경우와 같이, 선정되면 ‘선정’ 자체가 갖는 기쁨에 도취되어 선정의 긍정성이 과대 포장된다. ‘경제효과 부풀리기’가 대표적인 예다. 동계올림픽에서 흑자보다 적자를 본 경우가 더 많음에도 행운의 여신은 우리 편이라는 집단적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2004년 올림픽을 개최했던 그리스는 당시 빚으로 최근 국가부도사태까지 겪고 있다. 올림픽이 개발호재라는 믿음은 평창의 땅 3분의 2가 외지 투기꾼의 손으로 넘어간 데서 확인되고 있다. 재정이 빈약한 강원도도 부동산 개발이익을 기대해 알펜시아란 최고급 올림픽 리조트를 건설하는 데 무려 1조6천억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분양이 되지 않아 하루 1억2천만 원의 이자를 내고 있고, 그 비용은 도민, 나아가 국민이 그대로 떠맡고 있다. 개최가 확정되었으니 앞으로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착각이다. ‘착각과 부풀리기 효과’로 인해 개발호재를 노리는 뻥튀기 투자와 개발이 앞으로 더 극성을 부릴 수 있다.  


 평창의 경우, 개발비용도 문제지만, 경기시설들을 설치하기 위해 청정자연을 대대적으로 훼손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특히 알파인 스키 활강장 건설을 위해 산림유전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가리왕산 중봉일대의 대규모 개발이 불가피한 것으로 이미 전해지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하니 특별법을 만들어 돌파할 것으로 예견되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적잖을 것이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의 호도로 이도 쉽게 돌파할 것으로 보이지만, 자연의 학살에 가까운 이러한 환경파괴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자칫 이 문제 하나로도 행사개최가 불투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평창 동계올림픽은 강원도민의 주된 관심사였고 지역의 정치 현안이었다. 그러나 개최지로 선정되면서부터는 국가적 과제와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문제는 평창 동계 올림픽이 어떠한 것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국민들은 국가적 경사로 기뻐하는 박수를 치도록 강제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네티즌은 ‘평창 개최가 확정되는 소식을 전하던 여자 앵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무서운 국가주의의 그림자를 보았다고 했다. 


 이번 신청지 중에서 평창 지역주민들의 동의 수준이 가장 높았다. 반대로 독일 뮌헨에서는 주민들이 지역환경 파괴를 우려하여 ‘노 올림픽’을 합친 ‘놀림픽’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렸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대통령과 재벌 총수까지 나서서 선정을 진두지휘하면서 서로 공을 나누어 갖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연일 소개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가 감히 평창의 선정을 반대할 수 있을까? 정부 당국자는 트윗을 통해 ‘그런 사람이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라는 멘트마저 날렸다. 


 이른바 ‘비국민’론은 평창 올림픽이 국가주의에 의해 포장되고 정당화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평창 올림픽이 국민과 자연에게 빚을 남기지 않고, 그러면서 세계시민이 함께 즐기는 진정한 스포츠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이에서 ‘놀림픽’을 주장하는 비국민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야 한다. 탈근대 정치의 미덕 중 하나는 ‘차이와 다양성의 정치’다. 올림픽은 인종, 문화, 민족, 국가의 차이와 다양성을 화합의 축제로 이끌어내는 장이다.  

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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