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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6. 15:19

우리 안의 야만 2010년2010. 12. 6. 15:19


<시민사회신문> 시론 글/2010.12.1

우리 안의 야만

조명래(단국대 교수, 환경정의 공동대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터졌다. 6.25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남한 지역에 무모한 포격을 가했다. 레바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나 볼 수 있는 처참한 폭격 현장이 우리가 사는 터전에서 재현된 것이다. ‘전쟁 개시자’라 불리는 미 NBC 종군기자 리처드 엥겔도 취재 차 들어 왔다고 한다. 세계인들은 그가 전하는 한반도의 전쟁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저들은 왜 저렇게 목숨을 내놓고 싸울까’하는 우리의 야만성을 비웃을 것이다.

아, 어쩌다, 또 다시 전쟁을 치러야 할 야만의 시대로 돌아갔을까? 서글픈 회환이 뼈 속까지 스며든다. 그 회환이 서글픈 까닭은 내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이웃을 잃었다는 것만 아니라 60년 전의 야만의 시대로 돌아간 사실 때문이다. 60년 전 6.25 동란은, 권력자들의 패권놀음에 의한 것이지만, 민초들이 형제를 적으로 여기고 서로 죽이는 야만 그 자체였다. 지난 60년간은 야만이 핥긴 트로마를 치유하는 회환의 나날이었지만, 연평도 폭격은 ‘민족의 현재 시각’을 60년 전 야만의 시대로 단박에 돌려놓았다.

통일이 되어도 시원찮은 판에 누가 도대체 이 같은 ‘역전의 상황’을 불러 왔나? 북한을 전쟁광 집단으로 매도하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내 몸을 불사르겠다는 맹목적 쇼비니즘에 빠져들기 전에 냉철히 생각해보자. 개인은 물론이고, 정권조차 통제할 수 없는 남북의 적대는 적대의 자기상승만 초래해 결국 전쟁만이 마지막 해법이 된다. 그러나 굴욕적인 평화 대신 전쟁을 치른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끝내 얻게 되나? 국민만 참아주면 3일만에 북녘을 싹쓸이해 공산독재로부터 형제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하루 230만명의 형제동포들이 죽어가는 데도 말이다? 세계 최고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도 그랬지만, 전쟁은 전쟁일 뿐이었다. 무고한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을 빼어간 미국의 전쟁행위는 전쟁명분이 되었던 사담 후세인의 독재가 저질렀던 것 보다 더 많은 패륜적 결과만 남겼다. 그러한 짓을 개인으로서 미군들은 조국을 위해 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참으로 야만스럽지 않는가?

상호패착의 적대 상황에서는 힘있고 여유 있는 세력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긴 호흡으로 평화를 만들어 전쟁의 질긴 불씨를 조금씩 꺼가는 ‘어른스러움’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연평도 폭격은 명백히 북측이 저질렀지만, 북측이 저지르도록 빌미를 ‘어른스럽다고 믿고 있는 우리’가 주지 않았는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폭격을 당했고 사람이 죽었기에 되갚아 주기 위해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남측의 반격논리는 기실 북측이 남측의 전쟁위협를 경고하기 위해 폭격을 했다는 것과 똑 같은 ‘야만의 논리’다. 60년전 수백만 동족을 죽이는 6.25도 서로의 야만이 충돌하면서 커졌고 서로가 지금까지 책임을 돌리고 있다.

평화를 진정 고민하는 정권이라면, ‘감정적인 군사충돌’을 낳을 수 있는 빌미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현 정권을 포함한 보수주의자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햇볕정책’은 어둠의 자식인 북측을 양지바른 곳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적대가 적대를 낳는 야만의 시대’를 ‘신뢰가 신뢰를 낳는 지혜의 시대’로 바꾸어 민족의 재결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 햇볕정책의 진정한 의미란 뜻이다. ‘퍼준 것이 핵무기로 만들어져 남측을 공격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정책의 진의’를 철저하게 왜곡한 것이다. 허구가 진실인냥 담론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적대를 적대로 끊임없이 이끌어가는’ 우리 안의 야만 때문이다.

일전의 뉴욕타임즈 사설은 우리 대통령에게 물었다. 북측이 사전에 공지를 하면서까지 폭격을 감행한 한 핑계였던 ‘북측해역을 향한 총질(포사격)’의 아이디어를 누가 냈는지 말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 세계적인 악동이라고 선전하면서, 왜 그들의 앞마당에서 그들의 부하를 돋우는 훈련을 굳이 해야 했던가? 결과가 가져올 파국을 예상하지 못했나? 왜 그랬을까? 적 앞에서 힘 자랑하는 군사훈련을 감행하는 것은 이 정권 안에 꿈틀거리는 ‘야만성’ 외엔 설명할 길이 별로 없다. 우리와 관련된 것에 대해선 모든 것을 덮고, 모든 걸 적의 소행으로 돌리고, 그런 후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될 전쟁을 선동하는 것은 적과 별로 다르지 않은 우리 안의 야만에 의한 것이다.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보수논객의 주장은 ‘야만’의 극치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본성을 에로스와 타나토스로 나눈 바 있다. 전자는 사랑하는 본성이라면 후자는 파괴하는 본성이다. 전쟁을 부추기는 야만은 우리의 안의 타나토스가 집단적으로 발현하는 현상이다. 타나토스가 집단의 이성으로 지배하는 나라는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미래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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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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