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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7 11:15

이념의 무지로부터 탈피 2006년2010.07.07 11:15

이념의 무지로부터 탈피 

 나이가 30이 되던 해, 나는 영국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 년간 영국의 어느 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이었으니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였다. 당시에는 외국을 나가려면 정부에서 실시하는 안보교육을 받아야 했고, 또한 적성국가로 분류된 나라의 사람들은 정부허가 없이 만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아, 그런데, 영국정부가 주선한 영어 학교에 가니 원수의 나라 중공에서 온 중년 어른들이 여러 명 있지 않는가.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면해야 할 지 몰라 전전긍긍했고, 실제 그들을 만났을 때는 가슴이 크게 뛰었다. ‘내가 빨갱이 나라 중공 사람들을 만나다니....잘못하다가 적성국 사람과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말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중공 놈’이나 ‘소련 놈’들을 우리를 침공한 불천지 원수로 여겼고 ‘공산당 빨갱이’인 그들의 머리엔 뿔이 있고 얼굴이 빨갛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태어나 60년대 초반부터 초등학교를 다닌 우리세대는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북한(북괴)’을 반인륜적인 집단으로 믿었고 전쟁이 나면 어느 때든지 몸을 바쳐 싸울 정신무장을 강제 받으며 자랐다.

 

 이러한 이념적 무장 때문에, 나는 중공 사람을 대하면서 그들은 우리의 적이고 싸워야 할 대상으로 여기면서 마음속에 일정한 경계선을 그었다. 그러나 매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그들이 우리 동네 아저씨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뿔도 없었고, 또한 얼굴도 빨갛지 않았다. 우리와 같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누가 나에게 저들을 인간으로 볼 수 없게끔 하는 사고와 사상을 강요했던가? 그러면서 나는 내가 지난 30년간 어떠한 이념적 감옥 속에 살았을까를 반문하기 시작했다.

 

 영어 과정을 마치고 대학으로 배치되어 연구 활동을 하면서 나는 제 3 세계를 연구하는 기관의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그 도서관 서고에는 남한과 북한의 자료가 나란히 놓여 있었기에 국내에선 볼 수 없는 ‘불온 문서’인 북한관련 자료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북한자료를 대하는 것은 당시로선 이념의 편협성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의 체험이었다. 그러던 도중 나는 한국전쟁의 기원이 북침(北侵)에 있다는 주장이 담긴 어느 외국학자의 논문을 보게 되었다. 그건 나에게 엄청난 지적인 충격이었다. 그간 내가 알고 있던 남북 분단의 역사적 연원, 그에 바탕을 둔 민족정통성, 남북대립의 의미 등을 전반적으로 새로운 각도로 사고하게끔 했고, 동시에 한국사회의 지배이념과 권력구조 전반을 회의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구라파의 정통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현대사회의 이념과 권력의 문제를 분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인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이 안목은 다름 아닌 이념적 개안(開眼)을 의미한다. 개안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사회는 ‘이념의 굴레와 억압’으로 가득 차 있는 ‘이념적 원시사회’였다. 가령, 한국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는 이유로 북한을 여전히 적으로 간주하고, 이에 반하는 것은 모두 이적(利敵)과 반민족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우리의 주류이념이다. 이러한 이념은 남과 북을 이분법적으로 나눈 뒤 ‘우리에 대비하는 적의 관계’로 민족 공동체의 다른 반쪽을 대하는 것을 요구한다. 왜 우리는 전쟁을 겪어야 했고, 우리가 죽이려했던 대상은 누구였으며, 왜 그렇게 해야 했고, 누구를 위해 그래야 했는지.... 등과 같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정권과 체제에 의해 쓰여진 이념의 시나리오에 따라 민족문제를 기계적으로 재단하고 있다.

 

  ‘이념의 무지’로부터의 탈피는 이분법적․적대적 사고를 버리고 민족공존을 모색하는 ‘통합적’ 사고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이 탈피는 전쟁과 같은 개인사적 체험이나 체제에 의해 강요된 인식 틀을 벗어나며, 남과 북, 보수와 진보의 선택에서 자유로워지는 실천의식을 갖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는 법과 제도의 개혁에 의해서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역사․사회․권력의 문제에 대한 민족성원들의 냉철한 인식과 자각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즉, 이념의 무지로부터 탈피는, 정치나 제도의 개혁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학과 같은 지식생산자들이 민족적 삶의 역사적 현실이나 현대사회의 구조적․이념적 실체를 냉철하게 밝히고, 이를 교육을 통해 사회적으로 확신시켜, 국민 대중들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인식과 실천의식을 갖게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최근 우리사회의 이념논쟁 속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의 냉전적 주장과 이념은 여전히 민족과 사회문제의 다차원성에 대한 이해의 결핍증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보수주의적 지식교육이 계속되는 한 이념의 개방화와 다원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2006.11.2  <시민의 신문>에 실린 글이었습니다.

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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