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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7 15:17

지상낙원, 스토워헤드 2009년2010.09.27 15:17


<내셔널트러스트메거진>을 위한 글/2009.12.13

 

지상낙원, 스토워헤드

 

조명래(단국대 교수,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정확히는 대저택에 딸린 정원)을 들라면 윌트셔(Wiltshire)에 있는 ‘스토워헤드(Stourhead)’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영국 내셔녈트러스트가 소유하고 있는 사이트의 하나인 이곳은 연간 이용자가 35만명에 이를 정도로 영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붙여진 이름만 보더라도 ‘이상미(bueau ideal)가 구현된 정원’, ‘그림 같은(picturesque) 정원’, ‘풍경식 정원’, ‘전설의 정원’, ‘시적인 정원’, ‘영국정원의 진수’,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정원’ 등이 있다. 이중에서 가보지 않는 사람을 위해 가장 적절한 명칭은 ‘파라다이스’, 즉 ‘낙원’일 것 같다. 스토워헤드의 한 중간에 서 있게 되면 마치 그림같은 낙원에 와 있는 느낌을 들게 하니 말이다. 스토워헤드는 실제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꾸며진 정원이다.

 

스토워헤드는 런던에서 볼 때 ‘서남부 영국’이 시작되는 윌트셔 내에서도 서쪽의 섬머셋(Somerset)과 경계하는 곳에 있다. 런던에서 스토워헤드까지 차로 가면 1시간30분 정도 걸리지만 워터루(Wateroo) 역에서 기차를 타면 인근의 길링함(Gillingham)까지 2 시간 이상 소요된다. 내셔녈트러스트가 현재 소유한 스토워헤드의 총 면적은 11평방킬로미터(약 330만평)으로 여의도 3.2배에 이른다. 이곳은 본래 ‘호어(Hoare) 가문’이 소유한 장원의 일부였다가 1946년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되었다. 스토워헤드 주변의 광할한 땅은 호어 가문이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스토워헤드는 윌트셔에 있는 ‘스토워 강(River Stour)’의 나트막한 계곡을 개조해서 만든 대규모 인공 호수 정원이다. 스토워헤드 부지 내에는 파라디오 양식(16세기 이탈리아, 17세기 영국 건축양식)의 대저택 (미술품, 서적 등 문화유산 소장), 스토워톤(Stourton)이라 부르는 부락, 농장, 숲, 인공호수, 댐, 호숫가의 고대 로마식 건물과 조각 등이 들어차 있다.

 

스토워헤드 일대는 700년 동안 지역 터주 대감으로 살았던 ‘스토워톤 백작’의 소유였다. 1717년 스토워톤 백작은 런던의 은행부호였던 리차드 호어(Richard Hoare: 1648-1718) 경의 아들인 헨리 호어1세 (Henry Hoare 1: 1677-1725)에게 이곳을 팔았다. 이 땅을 매입했던 헨리 호어 1세는 1720년부터 1724년 사이 장원에 있던 기존 저택(manor house)을 허물고 이탈리아 건축양식인 파라디오(Palladian) 풍의 대저택을 지은 뒤 이름을 ‘스토워헤드’로 붙였다. 그 후 200년 동안, 호어 집안의 사람들은 정원을 지속적으로 꾸몄고 본채에 해당하는 대저택에는 서재와 화랑 등을 증축해 각종 예술품과 서적들을 수집하고 보전해 왔다. 헨리 호어 1세가 매입했던 1717년부터 내셔널트러스트에게 기증된 1945년 사이 스트워해드의 주인은 7번이나 바뀌었다. 스토워헤드가 현재의 모습과 같이 자리가 잡은 것은 특히 2번째 소유주였던 헨리 호어 2세(1705-1785) 때였다.

 

헨리 호어 1세는 1725년에 운명을 했고, 이어 그의 아들인 헨리 호어 2세가 스토워헤드를 상속받았다. 상속받은 후에도 그는 런던에서 가업인 은행업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던 1741년 그는 스토워헤드로 돌아왔다. 돌아 온 2년 뒤 그는 두 번째 부인을 잃었다. 그 후 다시 결혼을 하지 않았던 헨리 호어 2세는 스토워헤드의 정원을 조성하고 꾸미는 데 남은 생애를 바쳤다.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의 풍경식 정원과 고대 로마 문화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고 스토워헤드를 정원으로 꾸미는 데 이를 반영했다. 그의 꿈은 특히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이나 푸생 등의 그림에 표현된 유토피아를 형성화하는 것이었다. 스토워 강에 댐을 막아 인공 호수를 만들고 주변에 각종 나무와 꽃을 식재하여 유토피아적 자연미를 보여주는 전설적인 정원이 그렇게 해서 스토워헤드에 조성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에는 프랑스 풍의 조경양식, 즉 기하학적이고 권위적인 정원조경 양식이 지배적이었다. 헨리 호어 2세가 스토워헤드에 도입한 풍경식 정원양식은 그런 점에서 영국 조경역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여는 것이 되었다. 이 양식은 이후 독일과 미국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영국식 정원양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정원을 조성하면서 헨리 호어 2세는 정원 곳곳에 그가 감명을 받았고, 또 구현하고 싶었던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유산들을 신고전주의 풍으로 재현했다. 이렇게 해서 호수 주변의 주요 장소에 판테온, 폴로라의 여신, 아폴로 신전, 물의 요정이 사는 동굴 등이 건축물과 조각의 형태로 설치되었다. 중세 고딕풍도 기념비, 교회, 마을시설 등의 구조물의 형태로 호수가의 산등성이나 부락에 설치되었다. 호수 주변의 숲과 어울려 이러한 인공구조물들은 ‘스토워헤드’ 자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작품(a living work of art)’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이 작품을 생산한 헨리 호어 2세를 그래서 ‘위대한 헨리 호어(Henry Hoar, the Magnificent)’라 부른다.

 

헨리 호어 2세를 이는 리차드 콜트 호어 경(Sir Richard Colt Hoare: 1758-1838)이 주인으로 있는 동안 스토워헤드는 더욱 격조 있는 자연 및 문화 공간으로 가꾸어졌다. 헨리 호어 2세의 손자로서 가장 많은 귀여움을 받았던 리차드 콜트 호어 경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스토워헤드를 꾸미고 가꾸는 것을 보고 자랐다. 1785년 리차드 콜트 호어 경은 스토워헤드를 유산받았지만, 같은 해 아내가 출산을 하는 중 사망했다. 상심을 달래기 위해 그는 근 6년간이나 유럽을 돌아 다녔다. 여행으로부터 돌아 온 후엔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는 스토워헤드를 가꾸면서 여생을 보냈다. 천성적으로 학자였던 스토워헤드는 지역 일대의 유적들을 발굴해 기록하고 서재를 확장해 각종 사료와 예술작품들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매진했다. 아울러 그는 호수 주변에 할아버지가 남긴 조잡스러운 설치물들을 철거하는 대신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가져온 나무와 화초들을 심어 더욱 환상적인 풍광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19세기 중후반부에는 스토워헤드의 주인이 세 번 바뀌었다. 1838년에서 1841년 사이 헨리 휴 호어 경(Sir Henry Hugh Hoare), 1841년에서 1857년 사이 휴 리차드 호어 경(Sir Hugh Richard Hoare), 1857년에서 1894년 사이 헨리 에인슬리 호어 경(Sir Henry Ainslie Hoare)이 각각 주인이었다. 이 기간 동안 스토워헤드는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예, 저택의 일시 폐쇄, 미술품 매각 등) 원형대로 관리되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주인인 헨리 휴 아서 호어 경(Sir Henry Hugh Arthur Hoare)이 스토워헤드를 소유했던 1894년에서 1946년 동안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 사람이 가장 오래 동안 소유했던 이 기간 동안, 스토워헤드의 건축물들이 급격하게 노후화되고 정원의 나무와 꽃들이 무질서하게 확산되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새 주인이 대대적으로 보수하는 동안 1902년 대저택에 불이 나 소장품의 일부가 유실되기도 했다. 1차 대전 동안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헨리 콜트 아서 호어(Henry Colt Arthur Hoare)가 이집트의 전장에서 죽었다. 전쟁 동안 대저택은 전쟁 부상자를 치료하는 휴양시설로 활용되었다. 2차 대전 때는 장원 부지에 군대가 주둔하기도 했고, 비행장이 설치되기도 했다. 보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계를 느낀 헨리 휴 아서 호어 경은 결국 1946년에 스토워헤드를 내셔널트러스트에게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마땅한 상속자도 없었고 유지관리에 따른 비용이 과도했으며, 무엇보다 (내셔널트러스트에게 기증하면) 국가적인 유산으로 영구히 보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내셔널트러스트에게 기증한 것으로 보인다. 기증한 후 일 년 뒤에 헨리 에인슬리 호어 경은 죽었다.

 

기증을 받은 첫 몇 년간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스토워헤드의 숲을 관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숲을 망가뜨리는 불필요한 수종들을 대거 제거했다.

1960년대 동안 내셔널트러스트는 댐, 다리, 아폴로 신전의 지붕 등의 문화유산들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1978년 내셔널트러스트는 스토워헤드를 장기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보전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중요한 관리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첫째, 정원을 처음으로 디자인하고 조성했던 헨리 호어 2세의 혼과 꿈을 승계하고 발전시킨다. 둘째,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정원과 주변의 지형지세가 생태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한다. 셋째, 나무와 화초들이 갖는 색깔이나 형태의 다양성 보다 단순성을 살려내도록 재식재(replanting)를 지속적으로 해간다.

 

이러한 보전원칙을 지키기 위해 내셔널트러스트는 정원전담관리팀을 운영하고 있다. 팀은 1명의 수정원사(Head Gardner), 1명의 부정원사(Assistant Head Gardner), 4명의 상근 정원사, 2명의 NT 인턴, 전문대수습생,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연간 35만 명의 탐방객에게 스토워헤드를 자연의 낙원(natural paradise)으로 선사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이들은 정원의 보전과 탐방객의 바램, 즉 보전과 이용의 요구조건을 조화하는 것을 최대의 책무로 여기고 있다.

 

물론 스타워헤드 사이트에는 자연유산만 아니라 문화유산도 풍부하다. 각종 기념비적 건축물은 물론이고, 대저택과 대저택에 소장된 미술작품(482점)과 책(약 5천권), 부락 전체,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스타워헤드는 이런 점에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함께 묶어 살아있는 유산으로 이용관리하면서, 유산의 본래적 가치를 영구히 보전해가는 영국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진수를 보여주는 현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200년 전에 낙원으로 일컬어지는 스타워헤드의 아름다움을 지상에 구현했고, 200년이 지난 지금 그 아름다움을 전 영국인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해준 호어 가문의 아름다운 소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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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린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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